그녀는 김소진(1963~1997)의 집을 지었고, 그 집에 문을 달았다.김소진의 흔적들은 살맞대며 살 수 있는 지붕을 찾았고, 그는 문을 여닫으며 평온하게 집을 드나들게 됐다.
“김소진은 ‘나’라는 한 작가에게 덮씌워진 작가였다. 그의 죽음은 사적인 것에 머물지 않았다.”
남편 김소진을 떠나보낸 지 5년, 소설가 함정임(39)씨는 말한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공적인 죽음이었다”고.
함정임씨가 다섯번째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민음사 발행)를 펴냈다. ‘김소진 전집’(문학동네 발행)의 출간을 일주일 여 앞두고서다.
민중의 삶에 천착했던 탁월한 리얼리스트 김소진.
이미지에 기댄 감각적인 글쓰기를 구현하는 함정임. 글쓰기의 계보가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김소진이 떠난 뒤 함씨의 작품은 남편의 자리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함씨는 “이제, 벗어난 것 같다”고 또렷하게 말한다. “새 창작집은 첫번째 소설집 ‘이야기, 떨어지는 가면’과 맞닿아 있다. 그때처럼 나는 내게 ‘다가오는’ 것을 썼다. 나의 정조(情操)가 잘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표제작 ‘버스, 지나가다’는 우체국 여직원과 짧은 관계를 맺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버스처럼 지나가는 남자들에 대한 기억은 몽고에 대한 환상과 섞인다.
‘꽃을 본 적이 있다’에서 남자는 공항에서, 오사카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와 마주친다. 여자를 좇다가 우연히 만난 고목을 앞에 두고 남자는 아득한 환상에 빠진다.
‘소풍’에서 낯선 남자와의 섹스는 소풍 오듯 나온 사막 같은 벌판처럼 몽환적이다.
함씨는 이렇듯 찰나의 환각에서 글쓰기의 씨를 받는다. 그 씨에서 틔운 꽃은 아주 잠깐 환하게 피어났다가 사라진다.
평론가 김동식씨는 함씨의 소설을 두고 “운명과 일상의 변증법이 아름다움의 환각에 이르렀다”고 평한다.
소설집의 단편 11편은 원고지 70매 안팎의 짧은 분량이다. 함씨는 이것을 ‘미니멀 소설’이라고 부른다.
“최소한의 양을 갖고 최소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려는 것이다. 나는 문학이 어떤 응결된 구조를 갖고 있을 때 자존심이 지켜진다고 믿는다.”
작지만 단단한 이미지가 맺히는 순간 상상의 여백이 커다랗게 번진다. 버리고 절제함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다.
그리고 함씨는 남편의 원고를 모았고, 교정을 봤으며, 사진을 골랐다. ‘김소진 전집’의 출간 작업을 준비하면서 그는 “남편과 동행했다”고 말한다.
장편 ‘장석조네 사람들’과 중단편집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자전거도둑’ ‘신풍근배커리 약사’, 짧은 소설을 모은 ‘바람부는 쪽으로 가라’, 산문과 습작소설 등을 묶은 ‘그리운 동방’ 등 전6권으로 김소진의 집이 지어졌다.
미아리 산동네, 운동권 대학생, 외국인 노동자. 가난과 절망으로 얼룩진 밑바닥 인생을 가차없이 그렸던 그이다.
어디에선가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하던 1990년대에 김소진은 너절한 삶을 포장하지 않고 던져놓는 것으로 세상과 불화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전집의 발문을 쓴 소설가 성석제씨는 “그의 산문은 그의 심성처럼 정결하고 허튼 군더더기가 없으며…짧은 소설은 허욕이 없고 속임이 없다”고 했다.
함정임씨는 “남편은 마음이 고우면서도 혜안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날선 소설을 쓸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함씨는 8월 중순 동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녀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에 외국을 여행한다.
김소진의 또 하나 소중한 흔적인 아들 태형(8)이 언제나 함씨와 함께 했지만, 이번에는 동반하지 않기로 했다.
“태형이에게도 남겨놓아야 할 곳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좀더 시간이 지난 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생기게 되는 그 곳”이라면서 함씨는 밝게 웃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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