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라고 생각할 수 없다. 너무 잔잔하다. 마치 얌전한 강물을 타고 가는 것 같다.홍도와 흑산도(전남 신안군). 너무나 유명해서, 그래서 격렬한 이미지로 뇌리에 남아있는 서남해의 끝섬 여행은 은하수같이 섬이 흩뿌려져 있는 신안 바다의 고요한 물결로 시작됐다. 그러나 결코 끝까지 고요하지는 않다.
신안군도의 바깥으로 나갈수록 바다는 제 모습을 드러냈다. 거친 파도. 홍도와 흑산도는 생각했던 대로 서남해의 거센 바다 위에 격렬하게 솟아있었다.
●홍도
‘한국 해벽미(海壁美)의 정수.’ 흔히 홍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백두산에서 흘러내린 백두대간의 정기가 남도의 끄트머리에서 잠시 사그러들다가 신안 앞바다에서 용솟음쳐 많은 섬을 만들었다.
무려 829개. 그 중 가장 끝에 있는 홍도는 백두대간 정기의 오묘함이 몽땅 고여있는 곳이다. 일찍이 1965년, 섬 전체가 천연기념물 제170호로 지정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름이 붙은 절경만도 ‘33경’이다. 원래 매화꽃보다 아름답다고 해서 매가도(梅加島)라고 불렸다.
홍도를 이루고 있는 바위는 규암과 사암. 오랜 풍화를 견디며 붉은 빛을 갖게 됐다. 특히 석양의 햇살을 받으면 섬 전체가 타는 듯하다.
그래서 홍도(紅島)라는 조금은 선정적인 이름이 붙었다. 목포에서 약 130㎞ 떨어져 있다.
서울과 대전이 150㎞라는 것을 생각하면 꽤 먼 섬이다. 홍도를 이루고 있는 섬은 모두 20여 개.
그 안에서 700명 남짓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다. 행정구역으로는 신안군 흑산면 홍도리. 두 개의 마을이 있는데 1구와 2구로 구분된다.
홍도 아름다움의 정수는 섬을 두르고 있는 해안이다. 도승바위, 남문바위, 탕건바위, 흔들바위, 칼바위, 제비바위, 기둥바위, 원숭이바위….
검푸른 파도 위에 솟아있는 붉은 바위들은 색깔의 대비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홍도에는 특이한 해수욕장이 하나 있다. 홍도해수욕장이라는 공식 이름이 붙어있지만 현지에서는 ‘빠돌’해수욕장이라고 불린다.
빠돌은 둥근 돌이라는 의미. 모래가 아닌 크고 작은 둥근 돌이 해변을 덮었다. 큰 것은 축구공만하고 작은 것은 어린 아이의 주먹 정도이다.
돌의 성분은 규암이다. 이 해수욕장에 누워있거나 물에 들락거리면 신경통, 피부병, 무좀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홍도는 또한 낚시꾼의 천국이기도 하다. 섬 전체를 빙 둘러 모두가 포인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돔, 볼락, 혹돔, 방어, 우럭 등이 잡힌다. 유람선을 타고 섬을 돌다 보면 거의 모든 바위에 낚시꾼이 진을 치고 있다.
물이 깊고 파도가 거칠어 양식 사업을 거의 못한다.
예전에는 약점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강점. 홍도에서 나는 수산물은 그래서 대부분 자연산이다. 맛이 예사롭지 않다.
●흑산도
흑산도(대흑산도)는 목포에서 홍도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있다. 목포에서 약 93㎞. 홍도와 소흑산도 등 서남해의 끝섬을 아우르고 있는 면 소재지이다.
숲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섬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모두 1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이 사는 섬은 11개이고 89개의 섬은 무인도이다. 무인도 중 푸른 언덕이 있는 넓은 섬에는 방목한 염소가 산다.
흑산도의 관문인 예리항은 동중국해와 서남해의 어업 전진기지. 한국 배는 물론 중국 어선들도 자주 드나든다.
흑산도에는 꽤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았다. 서기 828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의 해상왕 장보고가 청해진을 치고 흑산도를 중심으로 큰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5,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다. 조선 말 실학사상을 전파했던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유배생활을 했고 생을 마친 곳이기도 하다.
정약전은 이 섬에 사는 15년간 물고기, 해산물 등 155종을 채집해 명칭, 형태, 분표 등을 기록한 자산어보(慈山魚譜)를 집필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수산 동식물 연구서이다.
이 섬의 아름다움도 역시 바다에 드리워진 바위에 있다. 칠성동굴, 석주대문, 촛대바위, 학바위 등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해안을 뒤덮고 있다.
홍도의 바위가 여성적인 아기자기함이 있다면 흑산도의 바위는 남성적이고 우람하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이다.
첫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촛대바위. 촛대바위는 이제 많이 타버려 밑둥만 남은 모습을 하고 있다. 푸른 바다에 높이 50㎙ 정도로 솟아있는 이 바위는 아래쪽으로 큰 굴이 뚫려있다.
장보고가 당나라와 교역을 할 때 이 바위가 등대 구실을 했다고 한다.
칠성동굴도 꼭 찾아가야 하는 명소. 높이 20m 정도의 해식동굴로 깊이 무려 100m에 이른다.
입구는 한 곳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7개의 가지 동굴이 나 있다. 신라시대부터 이 곳에서 뱃길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냈다고 한다.
신안=글ㆍ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두 섬 즐기려면
긴 여정이다. 그러나 대가를 충분히 돌려 받는 아름다운 여행이다.
먼저 전남 목포시로 가야 한다.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약 4시간.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돼 훨씬 빨라졌다. 호남선 목포행 열차를 이용해도 된다.
목포역(061-242-7788)에서 홍도와 흑산도행 배를 타는 목포여객선터미널(061-243-0116~7)까지는 택시로 약 5분 거리이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배가 떠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흑산도 기상대(061-275-0365) 등에 연락해 그 곳의 기상을 알아야 한다.
홍도는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없다. 주민들은 짐차로 개조한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당연히 차를 실어 나르는 배도 운행하지 않는다.
흑산도에는 일주도로가 있고 차를 싣는 배도 출항하지만 요금이 비싸다. 목포여객선터미널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무료이다.
그래서 만차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인근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하면 하루 4,000~5,000원 선에 차를 세울 수 있다.
홍도행 배가 흑산도를 경유해 간다. 5대의 쾌속선과 1대의 카페리가 하루 7번 운항한다. 흑산도를 경유해 홍도가 아닌 소흑산도로 가는 배도 있으니 유의할 것.
흑산도까지는 약 1시간 50분, 홍도까지는 약 2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요금은 흑산도까지 2만 4,300원, 홍도까지 2만 9,750원.
홍도를 둘러보는 으뜸 방법은 역시 유람선을 타는 것이다. 1인당 1만 2,000원씩 받는다. 출항 시각은 비수기에는 비정기적이고 성수기에는 수시이다.
비수기에는 여객선이 도착하거나 출항하는 시각에 맞춰 인원 상태를 봐 출발한다.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유람선 관광 중간에 어선과 조우한다. 뱃전에서 회를 관광객에게 판다.
우럭, 돌돔 등의 회와 삶은 문어 등을 얹어 한 접시에 2만 5,000원을 받는다. 유람선에 회를 먹을 수 있는 식탁이 마련돼 있다.
흑산도 여행은 육로관광과 해상관광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육로관광은 일주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버스의 경우 7,000원, 택시는 4만~5만 원 정도이다.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해상관광은 유람선을 타는 것. 수시로 운행한다.
흑산도의 유람선 코스는 모두 3가지. 약 1시간 40분이 걸리는 제 1코스가 인기가 높다.
칠성동굴, 만물상, 촛대바위, 삿갓바위 등 다물도 인근의 명승을 찾아간다. 제2코스는 영산도 쪽으로 석주대문, 비성동굴 등이 대상이다.
3코스는 정약전 유배지, 최익현 유배지 등을 찾는 흑산도 본섬의 일주 관광이다. 우리여행사(02-733-0882) 등에서 열차와 배를 연계한 홍도ㆍ흑산도 여행상품을 내놓고 있다.
■길에서 띄우는 편지
25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홍도에 갔었습니다. 목포에서 큰 물통을 들고 배에 올랐습니다.
섬에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자기가 쓸 물은 직접 가져가야 했습니다.
똑딱선 수준의 작은 배였습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요동을 쳤습니다. 5시간이 더 걸렸던 것 같습니다.
웬만한 탈 것에도 멀미라는 것을 몰랐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악몽’이었습니다. 섬에서도 몸과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았습니다.
편의시설도 부족했고, 특히 관광보다 고기잡이에 더 열심이었던 섬사람들의 태도는 ‘불친절’로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본전생각을 했었습니다.
25년 만에 다시 찾은 홍도는 참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뱃길부터 편했습니다. 3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쾌속선을 탔습니다.
의자도 넓고 부드러웠고, 2층 객실에는 간단하게 참을 먹을 수 있는 식탁까지 갖춰져 있었습니다. 파도가 약간 치기는 했지만 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고급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안락했습니다. 2시간 남짓. 행복한 항해였습니다.
홍도의 숙박시설은 휘황찬란한 인테리어를 한 고급은 아닙니다. 온돌방에 이불이 전부입니다. 겉으로는 보잘 것 없습니다.
그러나 정갈합니다. 값싸고 기분 좋은 잠자리입니다. 지하수를 개발해 물도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항구 옆에 쓰레기 소각장을 만들어 웬만한 쓰레기는 자체해결합니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기분 좋은 것은 주민들의 친절입니다.
‘관광 마인드’라고 해야 할까요? 모든 주민이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 섬에서 친절은 당연한 덕목이겠지요.
그런데 친절의 수위가 적당합니다.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부담이 없습니다.
이웃처럼 그냥 섞여버립니다. 30년 넘게 관광지로 이름을 떨친 곳답게 주민들의 노하우가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관광 마인드는 바로 수익으로 연결됩니다. 포구의 해산물 난전에서부터 여관과 횟집 등 섬의 경제 구조는 무척 조직적입니다.
나그네는 거의 불편을 느낄 수 없고, 반대로 주민의 지갑은 두툼해집니다.
삼촌이 운영하는 유람선에 조카의 고깃배가 다가와 ‘선상 즉석 회’를 파는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돈을 펑펑 써도 즐겁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봤습니다. 관광 한국을 원한다면, 홍도 주민에게 배울 것이 참 많겠다고.
권오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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