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가 지명된 신선감도 잠시, 계속 불거져 나오는 석연치 않은 문제들과 엇갈리는 해명에 정치권의 재보선과 대선 전략까지 더해져서 연일 나라가 들끓고 있다.장상 총리 지명자가 총리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국정수행 능력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는 인사청문회에서 철저하게 검증되어야 할 사항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파행적 운영을 거듭하고 있는 총리제도를 정상화하는데 지혜를 모으는 일이다.
우리 헌법 86조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민주화 이전에는 거의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선거제도의 조작, 관권과 금권을 동원한 선거로 집권당이 항상 원내 과반수를 유지하여 왔기 때문에 국회동의 절차라는 것이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권력의 상호견제를 중시하는 국민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여소야대’를 만들어 놓았고, 이에 따라 국회의 동의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충돌하는 현상이 빈발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정부의 첫 총리 지명자인 김종필 지명자에 대한 총리 인준동의안이 소위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의 투표 저지에 의하여 표결 도중 중단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또 의원 빼내오기를 통해 야당의 과반수 의석을 무너뜨린 이후 176일만에 가까스로 김종필 총리 지명자가 법에도 없는 총리서리 꼬리를 뗀 것이나, 다음 지명자에 대한 인준실패가 두려워 이한동 총리가 결과적으로 장수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은 모두 동의권과 임명권의 충돌을 일으키는 여소야대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국민의 뜻이 여소야대를 통한 권력의 상호견제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권이 파열음을 일으키지 않는 가운데 총리 제도를 운영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1980년 신 군부에 의해 주도된 제5공화국 헌법이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하지만, 87년 6월 항쟁으로 개정된 현재의 헌법도 미국식 대통령제보다는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헌정운영에서 그 실마리를 풀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헌법 제21조는 총리가 내각의 수반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동시에 제8조에서는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 헌정사에서도 총리는 임명권을 쥔 대통령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이 관행을 끊고 총리와 대통령이 권한을 나누는 방향으로 헌정사를 재정립하게 된 것은 1986년 여소야대가 출현하고 나서부터였다.
당시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하거나 의원 빼내오기와 같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모색하는 대신 의회 다수당의 지도자인 시라크(현 대통령)를 총리로 임명하였다.
과거의 총리들과 달리 의회다수당의 지지를 받는 시라크는 대통령의 그림자가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자신의 권한과 역할을 다하는 동거정부의 한 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 후 93년과 97년 여소야대가 발생하자 프랑스는 동거정부를 탄생시키고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누었다.
이러한 프랑스의 헌정 운영을 거울삼아 우리도 여소야대가 발생하면 소모적인 정계개편 논쟁으로 국정을 마비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의 의도가 진정한 의미의 중립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에 있음을 깨닫고 야당소속 내지는 야당지지 총리를 임명하는 관행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한 총리가 헌법 87조에 의거하여 국무위원 임명에 대한 제청권을 행사할 경우 그 내각의 중립성에 대해서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또 헌법 82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의 국법상의 행위에 대해 야당 소속 총리와 그가 제청한 국무위원이 부서를 할 경우 어떻게 제왕적 대통령이 가능하겠는가?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이 헌법 탓이란 소리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모두 운영을 잘못한 탓이다.
/김민전 경희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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