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7월16일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81세로 작고했다.카라얀은 1955년에 베를린 필하모니의 종신 지휘자로 임명됐지만, 죽기 직전에 경영진과의 갈등 끝에 사임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카라얀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름도 찾기 힘들다. 카라얀은 당초 피아니스트를 지망했다.
빈에서 피아노를 배우던 그는 빈 국립음악원의 지휘자 프란츠 샬크에게 사사하며 지휘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21세 때인 1929년에 울름의 오페라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이래, 그의 자리는 늘 지휘자석이었다.
나치와 협력한 경력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2년 남짓 지휘 활동이 금지되기도 했지만, 카라얀이라는 이름은 클래식 음악의 가장 위대한 악단들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그의 이름과 떼어놓을 수 없는 베를린 필하모니는 물론이고, 빈 필하모니, 파리 필하모니 등 유럽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관현악단이 그의 지휘를 받았다.
카라얀은 또 바그너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상연하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에서도 지휘봉을 잡았고, 1960년대 이후 죽을 때까지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총감독을 맡았다.
매년 여름에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제와 잘츠부르크 음악제는 유럽의 음악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독일 바이로이트는 바그너가 만년에 살았던 곳이고,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와 카라얀의 고향이다.
카라얀은 세 번 결혼했다. 오페라 디바였던 첫번째 아내 엘미 홀거뢰프는 그보다 11살 연상이었다.
유대인의 피가 1/4 섞인 두번째 아내 안나 마리아 귀터만은 카라얀보다 9살 아래였다. 그리고 세번째 아내인 프랑스인 엘리에트 무레는 모델 출신으로 지휘자보다 29세 연하였다.
카라얀은 이 세번째 결혼에서 두 딸을 낳았다.
고종석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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