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을 하다 보면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공격을 동시에 받기 일쑵니다. 특히 표적이 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지요.”모 시민단체 경제분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경제학자 K씨는 “최근 미국 기업들의 회계스캔들이 핫 이슈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스탠더드 ‘세일즈’가 더 힘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으면서 경제 부활의 주문(呪文)처럼 읊조려 온 ‘글로벌 스탠더드’가 호된 시련을 겪고 있다.
‘주식회사 미국’을 지탱해 온 절대가치이자, 미국 이외 세계 경제 ‘디스카운트’의 근거였던 투명성(신뢰성)이 최근 미국 기업들의 잇단 분식회계 스캔들로 치명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경영진의 스톡옵션을 불려주기 위해 매출을 부풀리거나 부실을 감춘 사안이 최근까지만도 무려 12건이나 터진 것을 두고 국내 재계 일각에서는 서구식 전문경영인 모델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아전인수식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좌파 역시 미국 중심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정서적 저항의 고삐를 죌 조짐이다. 강연의 곤혹스러움은 이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직면한 곤혹스러움은 보다 ‘현실적’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증시가 미국 유탄으로 더 곤란을 겪고 있고, “회계스캔들이 과연 남의 일일까” 하는 불안도 있다.
그래서 ‘글로벌 스탠더드=아메리칸 스탠더드’ 등식을 강요하며 우쭐대던 미국의 망신을 조소하고, 마음 편히 대리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증시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가 우리 기업개혁의 고삐를 죌 타산지석이어야지, 개혁 퇴행의 논거가 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핵심인 투명성과 책임성이 미국 자본주의가 보유한 배타적 지적재산권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윤필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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