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특징은 다양한 이민들로 구성된 다인종 국가라는 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랫동안 백인들의 나라였고, 백인문화는 곧 미국의 지배문화였다.그래서 미국사회를 ‘끓는 가마솥(melting pot)’이라고 불렀을 때, 그것은 결국 백인문화로의 동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주변부 문화를 조명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문화제국주의에 반대하는 탈식민주의의 확산에 힘입어 소수 인종들은 점차 자신들의 정체성을 추구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되찾게 되었다.
미국이 ‘섞어놓은 샐러드(tossed salad)’라고 불린 것은 바로 그런 맥락이었다. 샐러드는 각기 다른 형태와 맛을 가진 각종 채소들이 모여, 공통의 드레싱에 의해 공평하고 동등하게 뒤섞이기 때문이다.
이후 미국 내 소수 인종들은 각기 다른 인종들의 결속을 상징하는 ‘무지개 연합(rainbow coalition)’을 주창하기도 했다. 무지개는 서로 다른 색들의 수평적 공존을 통해 아름다운 조화를 창출해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이라는 개념이 미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바로 그러한 배경에서였다. 다문화주의는 지배문화와 피지배문화, 중심문화와 주변문화의 서열을 없애고 다양한 문화의 동등한 공존을 주창하는 사조로서 그 의의가 있다.
전에는 미국사회에서 미미한 주변문화였을 뿐인 한국계(또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문화(또는 아시아문화)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진 데에도 바로 이 다문화주의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다문화주의는 그동안 백인 서구문화 중심이었던 미국 학교들의 교과과정을 크게 바꾸어 놓았으며, 학생들은 이제 미국문화를 형성하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소외되어 온 비서구 문화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그와 같은 변화에 따라, 소수 인종 교사나 교수들에 대한 수요 역시 급증해 유색인들이 백인들보다 오히려 더 쉽게 고용되거나 각광받게 되는 일도 생겨났다.
그러므로 다문화주의는 소수 인종들로부터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만, 보수적인 백인들로부터는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예컨대 예일대의 역사학자인 도널드 케이건은 ‘왜 우리는 서구문명을 공부해야만 하는가?’라는 강연에서, “미국의 화합이나 정치적, 개인적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백인 중심 서구문명 연구를 인문교육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미국 대학들의 교과과정 개편을 비판했다.
앨런 블룸은 전통적 서구문화의 퇴락으로 인한 ‘미국정신의 종언’을 선언했고, ‘서구의 정전’의 저자인 해롤드 블룸은 뉴스위크와의 대담에서 “우리는 구시대를 옹호하고 있다.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졌다”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의의 결과가 미국의 ‘레바논화’는 아니다”라며 “만일 여성들과 소수 인종들과 최근의 이민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준다면 그러한 변화는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사이드의 지적대로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쳐야만 하는 미국의 교육기관에서 다문화주의는 위기나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측면을 갖고 있다.
미국문화는 비단 유럽계 백인들뿐 아니라, 원주민계, 아프리카계, 남미계, 그리고 아시아계 인종들에 의해서도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당혹스러운 것은 일부 한국인들이 백인 보수주의자들의 편을 들어 다문화주의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는 “다문화주의가 머지않아 소수 인종으로 전락할 미국 백인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위해 미리 주창하는 사조”라는 음모설까지 유통되고 있다.
그러나 라틴계와 아시아계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캘리포니아를 제외하면 미국 인구의 주력은 아직도 백인이다. 더구나 다문화주의는 비록 많은 백인들의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소수 인종들이 주창하는 사조여서, 그런 추측이 논리적 근거가 없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 국내에는 다문화주의가 다국적기업을 부추겨 제3세계를 착취한다는 이론도 있으나, 이 역시 본질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다문화주의는 생래적으로 평등주의적 좌파이지 자본주의적 우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문화주의는 보다 더 급진적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운동과 맞물리면서, 인종차별적, 성 차별적, 나이 차별적, 계급 차별적인 표현들을 폐지했다. 그러므로 오늘날 미국에서는 더 이상 차별하거나 편견이 들어가 있는 표현을 사용하지 못한다.
국내 일간지들은 히딩크 애인의 사진을 게재하면서 ‘흑인’ 여자친구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미국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이다. 백인인지 흑인인지를 굳이 밝히고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고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국을 흔히 인종차별 국가로 생각하기 쉽다. 사실 인종문제는 미국이 생래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이자 아메리카 대륙의 어두운 유산이다. 그러나 인종으로만 미국을 보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접근이다.
미국은 지금 변하고 있다. 오늘날 미국을 제대로 보려면 다문화주의를 통한 소수인종과 소수문화의 부상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백인 남자들은 역차별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부시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최근 오만하고 독선적이어서 점점 세계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런 보수적 정권조차도 다문화주의에 입각해 유색인들을 요직에 기용할 만큼 미국사회는 변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동안 잘 나가던 미국의 다문화주의가 9ㆍ11 사태 이후 애국심과 민족주의로 바꾸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럼에도 미국사회는 아직도 다양성과 타자의 견해가 허용되는 나라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에 가 있는 제자는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제가 있는 대학에서는 다문화주의에 입각한 소수 인종 문화가 인기이고, 보수적인 다른 대학들에서는 9ㆍ11 사태 이후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자기 반성적인 정체성 탐구를 꾸준히 해 나가는 백인 문학이 있는 반면, 다인종, 다민족의 목소리를 마음껏 키워나가는 문화와 문학도 있는 곳이 미국이었습니다. 7월 4일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미국 건국을 기념하는 축제를 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미국의 힘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다문화주의는 바로 그 다양성을 미국사회에 공급해주고 있는 새로운 사조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주의의 문제점은 그것이 인종, 계급, 성, 정체성 등에 관심을 갖는 과정에서 너무 정치적이 되기 쉽다는 점, 그래서 자칫 백인 지배문화와 대립해 헤게모니를 다투는 이데올로기로 경직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미국사회는 최근 다문화주의를 통해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샐러드나 무지개처럼 조화를 이루는 작업을 해내고 있다.
김성곤(金聖坤)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ㆍ서울대 언어교육연구원장
■아메리카 핸드북 / 미국적 가치 대명사 '와스프'
전통적인 미 기득권층을 뜻하는 와스프(WASP: 백인 앵글로색슨계 개신교도)라는 말이 빈번히 사용된 것은 60년대 들어 민권운동이 활성화하면서 부터다.
비(非) 와스프 백인이나 소수 민족들이 백인 주류층을 겨냥한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따라서 용어의 상용화는 역설적으로 와스프 지배력의 쇠퇴를 말해주고 있다.
와스프 문화는 미국적 가치와 동의어로 사용돼 왔다. 이들 가운데에서도 핵심인 ‘올드 스톡(Old Stock)’은 동부 출신으로 가계가 17세기 이전까지 올라가고 일하지 않아도 자산이 불어나는 계층을 부른다.
와스프 문화를 정치이념화한 것은 조사이어 스트롱 목사다. 1895년 ‘나의 조국’이라는 책에서 “앵글로 색슨은 시민적 자유와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라는 두 개의 위대한 사상을 이어받고 있다”면서 인종과 종교를 결합한 지배이념을 내세웠다.
청교도적 전통, 자유시장주의, 가족 중심주의 등 와스프의 미덕은 곧 미국의 공교육에서 도덕 규범이 됐다.
70년대 들어서는 이탈이 표면화했다. 사회학자 피터 슈랙은 71년 ‘와스프의 쇠퇴’라는 저서에서 “우리 아메리카니즘의 본질적 요소인 와스프 문화와 윤리가 상실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시기 영화 ‘러브 스토리’는 동부 명문가의 아들과 이탈리아계 이민의 딸의 비련을 통해 와스프 문화를 비판했다.
경제적으로 프로테스탄트는 79년 민간기업 관리직 4,300명의 68.4%를 점하다 80년대 중반에는 53.3%로 15%나 점유율이 떨어졌다. 가장 상징적인 게 미 엘리트의 필독 잡지로 꼽혔던 ‘포린 어페어스’ 편집 이사진의 변화다.
70년대초까지 모두 와스프 남성으로 채워졌으나 86년에는 여성 3명, 유대계 5명, 흑인 및 그리스계 각각 2명 등 비 와스프가 과반수를 점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할리우드 스타 이름의 변화를 통해 문화 지배력 상실의 조짐을 읽었다. 이즐 다니엘로비치가 커크 더글러스가 되고 도리스 커플호프가 도리스 데이가 됐듯이, 과거 스타들은 모두 와스프 이름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는 퓨리터니즘 등 전통들이 와스프의 민족성일 뿐 결코 미국을 대표하는 가치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전개되고 있다. 다문화주의의 주창자인 마이클 노박은 “잉글랜드인의 질서관이나 예의범절이 너무 보편화해 많은 미국인이 와스프 고유의 문화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승우기자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