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검찰이 연예기획사로부터 5,000여 만원을 받은 혐의로 음악 케이블 m.net의 김종진 상무이사를 구속하면서 말로만 떠돌던 연예계 금품 수수 비리가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른바 ‘PR비’로 불리는 연예계의 금품 수수는 이미 오래된 관행. 관계자들은 “없어질래야 없어질 수 없는 구조악”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문제가 광범위하다.≫▼무조건 띄워라
PR비가 생겨나는 원인은 알고 보면 단순하다. 음반과 가수를 띄우기 위해서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매스컴, 그 중에서도 TV다.
특히 1990년대 초반 댄스 음악과 아이돌 스타 시대가 열린 이후로는 TV가 가요에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TV를 타면 인지도가 높아지고 음반의 주요 소비자인 청소년들을 움직일 수 있다.
방송 출연료는 회당 50만원을 넘지 않지만 이름이 알려지면 각종 행사나 밤무대, CF에 출연해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목돈을 챙길 수 있다. 코스닥 상장 기업이라면 기업 가치가 높아진다.
문제는 기획사와 방송의 관계. 기업 차원에서 관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영세한 기획사는 소비자를 만나기 전 PD와 일대일 관계를 통해 방송을 상대한다.
게다가 음반은 많고 채널은 소수다. 한 달에 발매되는 음반은 평균 100여장. 기획제작사는 한국연예제작자협회에 등록된 270여개를 포함, 600여개에 달한다. 반면 TV는 공중파와 케이블을 합해도 10개가 안된다. 자연히 ‘잘 봐달라’_‘키워주겠다’는 관계가 성립한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불황은 PR비 의존도를 더욱 높였다. 음반산업협회가 집계한 지난해 국내 음반산업 총 매출액은 2000년보다 감소한 2,015억원. 2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회사는 GM기획, SM 엔터테인먼트, 싸이더스, 도레미 미디어, 대영 AV 등 5곳 뿐이다.
▼제작비에 맞먹는 PR비
PR비 관행은 상상 이상이다. 음반 1장당 제작비는 평균 2억원. 순수 제작비 1억원에 광고 등 마케팅비 5,000만원, 90년대 말부터 음반 홍보의 필수품이 된 뮤직 비디오 평균 제작비 5,000만원이 기본이다.
PR비는 이번 수사에서 드러나듯, 일인당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 음반업계의 한 관계자는 “능력이 있는 회사는 평소 알고 지내는 PD들을 모두 챙기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요 PD들만을 집중 관리한다”고 털어놓는다.
신인은 더욱 비싸 천만원대가 오간다는 후문이다. 코스닥 상장 대형기획사에서 관계자들에게 건넸다는 주식도 또 다른 PR비다. 결국 PR비가 제작비와 맞먹는 셈이다. 하지만 ‘대박’만 나면 아깝지 않다. 음반 50만장을 팔면 제작기획사는 20억원을 번다.
홍보비로 2억원을 쓴다 해도 5배 장사가 된다. 대부분의 기획사에서 오너가 직접 관리하지만 실장급 매니저들도 회의를 통해 액수와 대상을 알고 있다. 한 매니저는 “어떻게든 PD에게 돈을 건네고 관계를 맺는 것이 능력있는 제작자와 매니저로 평가 받는다”고까지 말한다.
▼PR비는 PR비를 부른다
한번 돈을 주고 음반을 홍보한 사람은 다음 번 음반을 홍보할 때도 ‘맨 입’으로 있을 수 없다. 돈을 주고 받은 사이에는 긴밀한 유대관계가 성립하고 음반을 1장만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은 가중된다. 결국 넓은 의미에서의 제작비가 상승하는 셈이다.
제작비가 상승하면 그 돈을 거둬들이려 하는 것은 불문곡직. TV에 적합한 가수, 유행을 의식한 엇비슷한 음악만을 만들 수 밖에 없다. 안전하기 때문이다. 음악적 실험이나 라이브 콘서트는 TV뒤로 밀린다. 결국 PR비가 PR비를 부르는 셈이다.
만일 지난번 음반이 크게 성공했다면 PD가 섭외할 때 새로 제작한 신인을 끼워 넣는 ‘패키지’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처음 신인을 홍보하는 기획사에게 경쟁을 가중시키고 결국 PR비에 눈을 돌리게 한다.
▼대안은 없는가
PR비 근절은 가요계 전반을 바꾸지 않고서는 요원하다. 이번 수사가 잠시 없어지는 듯 하겠지만 현재의 구조가 계속되는 한 언젠가는 다시 PR비가 생겨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중음악개혁포럼도 15일 성명을 내고 “PR비는 일부분에 불과하다.
방송과 음악의 문제, 저작권 문제, 신인가수 계약 문제, 립싱크 및 표절 문제, 공연문화 활성화대책 등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제작자의 발상전환이 가장 우선적이다.
한 매니저는 “제작자들이 100만장짜리 한 장보다 10만장짜리 10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음악, 질 좋은 상품을 만들어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요계에서는 받는 사람 이전에 주는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번져가고 있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전직 매니저가 전하는 고발 PR비 실태
현재 방송3사 가요ㆍ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는 한 달에 30여명 내외. 이에 비해 방송출연에 목을 멘 가수는 수백 여 명에 달한다.
결국 가수로서의 성공은 실력이 아니라 PD나 방송사의 선택에 의해 이뤄진다. 여기서부터 PR비 존재의 근거가 마련된다.
가수 매니저 출신 김모(31)씨. 그가 털어놓는 앨범홍보비(PR비)와 방송사 PD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밀접하고 광범위하다.
PD 대부분은 “이번 PR비 비리는 일부 PD에 국한된 문제이며 몇몇 매니저들이 소문을 증폭시키고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PR비를 그냥 돌려보내는 PD도 있다. 하지만 김씨는 “내가 아는 한 절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15일 김씨가 전해준 내용.
- 라디오는 어떤가.
“신곡 소개로서 더 이상 좋은 창구가 없기 때문에 라디오를 더 중시하는 곳도 있다. 일단 앨범이 나오면 라디오PD에게 간다. 홍보만 잘 되면 2~3주일은 계속 방송을 탈 수 있다.”
- 얼마씩, 어떤 방식으로 돈을 건네나.
“보통 새로 나온 음악 CD에 돈을 끼워서 준다. 주차장에 세워둔 PD 차 안에서 건네는 경우도 있다. 평 PD에게는 100만원, 부장급에게는 300만~500만원이다. 드러내놓고 안 받으려는 PD에게는 이런 편법도 쓴다. PD와 스태프, 가수 20여 명이 방송이 나간 날 식당에 모여 삼겹살 회식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먹어야 30~40만 원이 고작인데 미리 식당과 짜고 영수증은 100만~150만원으로 끊는다. 그 차액을 PD에게 건넨다.”
- 요즘은 젊은 PD들 사이에서 이 PR비를 안 받으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물론 있다. 그러나 안 받으려고 해도 기획사나 매니저가 거의 매일 룸살롱 같은 데서 향응을 베푸는 것이 이 바닥 생리다. 매니저들 사이에서는 ‘젊은 PD에게 돌아가면서 TV 가요프로그램을 맡기는 것은 이 같은 향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다.”
- 실제로 PR비를 건네면 효과가 있나.
“당연하다. ‘모 방송사는 자동판매기’라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다. PR비가 없으면 출연 자체가 안 된다.”
- 그러나 요즘은 방송사가 스타 가수를 여럿 거느린 대형 기획사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대형기획사가 과연 몇 개나 되는가. 아직도 방송 출연에 목을 멘 가수는 최소 수백명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코스닥 등록과정 '株로비' 의혹도
인터넷 음반 다운로드 사이트인 ‘소리바다’ 사용중지 호재로 상승했던 연예 엔터테인먼트 및 음반 관련업체들의 주가는 15일 연예비리 수사 악재로 일제히 폭락했다.
특히 일부 대형 연예기획사들이 코스닥 등록과정에서 방송계는 물론 정관계에 전방위 주식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00년4월 SM엔터테인먼트를 시작으로 코스닥 시장에 진입한 연예기획사 및 음반사들 현재 예당 YBM 대영에이브이 플래너스 서울음반 6개사가 등록, 엔터테인먼트 테마를 형성하며 코스닥 시장의 새로운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특정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다 수익구조가 불안정해 코스닥 등록 과정에 논란이 돼왔다. 1999년부터 등록을 추진한 SM엔터테인먼트는 사업성격이 대주주 개인의 영업력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 위험도가 높아 3차례나 탈락했으나 2000년 4월 등록심사를 통과했다.
이 때문에 당시 SM의 심사 통과 배경을 놓고 논란이 일었으며 등록과정에서 주식로비를 벌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코스닥위원회는 최근 명필름에 대한 등록예비심사에서 영화제작의 사업성격상 투자 위험도가 높다는 이유로 보류판정을 내려 형평성에도 문제가 일었다.
실제로 검찰이 확보한 주주명부에 등재된 인사 42명을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차명계좌라는 혐의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실제 주주가 정관계와 연예프로그램 방송계 관계자나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에스엠은 1999년부터 등록 직후까지 3번의 유상증자와 주당 5,000원에서 500원으로 액면분할을 하면서 주식수를 400만여주로 늘렸다.
코스닥 등록 당시인 2000년 4월27일 1만2,000원이던 주가는 이후 연속 13일 상한가를 기록했으며 40여일 후인 6월7일에는 7만3,400원까지 뛰었다. 2000년 1월 액면분할 이전에 이주식을 주당 5,000원에 산 주주들은 최대 140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 같은 등록전 주식거래와 관련 “방송단체 간부에 대한 주식 제공은 사실무근”이라며 “에스엠 주식이 1999년 9월 주당 5만원(당시 액면가 5000원, 액면가의 10배수)에 소액주주에 대한 주식분산을 위해 주간사인 대우증권의 적절한 평가가격으로 합법적으로 매매되었으며, 그후 99년 12월에 벤처캐피탈인 아시아벤처금융(주)등에 주당 6만원에 매매됐었다”고 반박했다.
김호섭기자
dre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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