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근무하는 한 서방외교관과 월드컵 얘기를 나누다가 이을용 선수가 화제가 되었다.그는 한국팀에서 이을용의 플레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공감이 된다. 한국의 첫 승 도화선이 된 황선홍의 발리 슛은 그의 발에서 나왔다.
미국과의 경기서 한 골을 먹고 허덕이던 한국팀을 구출한 안정환의 헤딩 골 역시 그의 발끝에서 시작됐다.
특히 3,4위전이자 한국팀으로서는 마지막 경기인 대 터키전에서 골로 연결시킨 그의 프리킥은 패배한 경기라서 다소 빛이 바랬지만 그 골 자체만 놓고 보면 이번 월드컵의 백미라는 데 이견이 없었다.
■그의 패스와 킥은 언제나 환상적인 선을 만들었다. 왜 히딩크 감독이 폴란드와 벌인 첫 경기에서 얻은 페날티 킥을 그의 발에 맡겼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페널티 킥을 실축하기 전 그의 눈매에 드리워졌던 불안한 표정을 많은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축구란 그런 것이라는 히딩크 감독의 해명이 그를 감쌌지만, 그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킥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 외교관은 이렇게 변명했다. “잘 찬 킥인데, 골키퍼가 너무 잘 막아낸 것이다.” 그런데 그 외교관에게 못다해준 얘기가 있다.
■이을용 선수는 월드컵 후 병원에 입원한 백혈병 어린이를 찾아가 축구공과 유니폼을 선물로 주며 격려했다.
그는 환자 어린이가 자신을 너무 보고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열일을 제치고 찾아갔다고 한다.
그 어린이가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세상에는 기가 막힌 환자가 많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의 모습이다.
옆에서 모든 가능한 희망을 붙잡으려는 부모의 모습 또한 보통 민망한 것이 아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상을 주었던 것은 매 경기마다 선수들이 어린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모습이었다.
정작 선수들은 너무 긴장해서 별로 느끼지 못했겠지만, 전세계 축구 팬들은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아마 이을용 선수는 백혈병 어린이를 보면서 더욱 월드컵이 어린이에게 주는 희망을 생각했을 것이다.
월드컵 4강을 이룬 축구 선수들은 어린이들의 우상이다. 인기의 힘은 대단하다.
특히 불우한 환경에 있는 어린이들에게 그 힘은 더욱 용기를 북돋운다. 이을용 선수가 인기를 더욱 유익하게 쓸 수 있도록 더 좋은 선수가 되기를 바란다.
김수종 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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