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기 여성들이 널리 복용해온 복합 여성호르몬제가 뇌졸중과 심근경색증의 발병을 높인다는 미 국립보건원(NIH)의 발표(본보 11일자 14면) 후 환자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이미 국내에서 50만명이 넘는 여성들이 치료 받고 있는 일반화한 요법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전문의들은 호르몬 치료를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사용할지 단정적 결론은 유보한 상태.
전문의들조차 "대체제가 필요하다" "소수 환자만 빼면 기존의 약도 무방하다"는 등 위험성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보이며 갈팡질팡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호주의학협회(AMA)는 10일 혼합 호르몬제제를 복용하고 있는 폐경 여성들에게 복용을 중지하겆나 의사와 상담하도록 경고했다.
그동안 활발하게 호르몬 대체요법을 실시해온 4명의 전문의로부터 ①과연 복합호르몬 요법을 중단해야 하나 ②이번 연구에서 밝혀진 문제는 무엇인가 ③복합호르몬치료가 누구에게 필요하고 누구에게 해가 되는지 답변을 들어본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진용 교수
①복합호르몬요법을 완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동안 유방암 등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갱년기증상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는 등 효과를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사대상이 된 ‘프렘프로’라는 약에 포함된 남성호르몬 성분(상품명 ‘프로베라’)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약들도 비교 연구해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②복합호르몬이 심혈관질환을 예방한다는 기존의 인식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졌다.
애초에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복합호르몬 요법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1998년 허스(HERS) 스터디에선 복용 1,2년간은 심근경색 발병률이 높아지나 장기복용하면 낮아진다고 조사됐었다. 이번 NIH 발표는 이를 다시 뒤집는 결과다.
③급성갱년기 증상으로 고통받는 환자는 복합호르몬 요법으로 극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또 폐경기 이후 골다공증이 이미 진행된 환자도 호르몬 치료가 필요하다. 반면 심근경색증, 협심증 등을 앓았던 환자, 가족이 이런 질병을 앓았던 환자는 이 요법을 피해야 한다.
▼삼성제일병원 내분비내과 한인권 교수
①복합호르몬 요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할만큼 심각한 위험은 없다.
논문 전문을 읽어보니 심혈관질환 치료ㆍ예방 목적으로 프렘프로를 쓸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다.
또 프렘프로 복용군과 비복용군이 몇몇 질병의 발병률은 차이가 있으나 사망률은 같은 수준이었다. 소수 환자만 제외하면 기존의 치료를 계속해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②프렘프로를 복용한 집단이 복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심근경색 발병률이 29% 높다는 점이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이다.
기존의 연구에선 오히려 심근경색 위험을 낮추는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이다.
그밖에 유방암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은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고, 대장암, 고관절골절 위험은 적다는 사실은 약의 효능으로 확인됐다.
③뇌졸중 심근경색 심혈관질환 등을 앓았거나 가족력이 있는 환자, 이러한 질환을 예방할 목적으로 복합호르몬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치료를 피하는 게 좋다.
그밖에 갱년기 증상, 골다공증, 대장암, 치매, 갱년기 우울증 등 예방에는 여전히 유효하다.
▼신촌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임승길 교수
①당장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론 복합호르몬 요법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일단 합성제제인 프로베라를 생약성분으로 대체하는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복용 용량도 줄이는 방향으로 재고할 필요가 있다.
②심장질환의 위험도가 높다는 것이 문제인데 결국 프로제스틴이 이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므로 이를 대체해야 한다.
그러나 에스트로겐만 쓰는 환자조차도 오래 복용하면 유방암 발병 위험이 높아지므로 장기적인 호르몬치료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③갱년기증상을 완화하는 데에는 단기(5년 이내) 요법만으로 충분하므로 큰 위험이 없다고 본다.
그러나 단기요법도 복용기간을 2~3년으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골다공증 치료 등을 위해 5년 이상 실시되는 장기요법은 대체약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유방암 위험이 있거나 자궁근종이 있는 환자는 이 치료를 피해야 한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강병문 교수
①복합호르몬 요법의 문제가 아니라 프렘프로라는 약제가 문제다.
복합호르몬 요법은 유용하나 미국산 약인 프렘프로는 피해야 한다. 이미 수년 전부터 환자들에게 유럽산 약을 처방해왔다.
유럽산은 미국산과 성분이 달라 이같은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본다. 또 복용량을 저용량으로 낮춰야 한다.
②비슷한 연구가 많이 있었으나 NIH라는 권위있는 기관이 실시했고 대규모의 무작위 조사라는 점에서 관심이 간다.
그간 프렘프로에 포함된 프로베라가 혈액응고, 암 발생 등에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연구돼 왔다.
③얼굴이 달아올라 밤잠을 자지 못하고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심한 갱년기 증상인 경우 복합호르몬 치료는 꼭 필요하다.
골다공증이 이미 진행 중인 경우도 그렇다. 대체약이 있는 증상에 대해선 호르몬제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미 보건원 발표 배경
미 국립보건원(NIH)이 9일 복합호르몬요법 연구결과를 발표하며 전격적으로 프렘프로 복용중단을 선언한 것은 심장질환에 대한 위험도가 기준치를 넘었다는 뜻이다.
복합호르몬요법이 유방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부작용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던 사실.
반면 심장질환에 대해선 치료ㆍ예방효과가 있다, 단기적으론 악화시키나 장기적으론 도움이 된다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연구에서 발표된 대로 심근경색 발병률이 29% 높다는 의미는 약 8,300명의 복용집단에서 심근경색 발병환자가 286명으로 비복용집단(전체 8,100명)에 비해 8명 정도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연구는 복용집단과 비복용집단의 사망률이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여러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복합호르몬치료를 받는 환자는 정기진단을 통해 오히려 유방암을 조기진단하는 경우가 많고 예후도 좋다고 전문의들은 말한다.
한편 이번 연구에서 2가지 호르몬이 아닌 에스트로겐만 복용하는 단독호르몬요법에 대해선 복용 실험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환자는 자궁내막암이 발병할 수 없기 때문에 단독호르몬요법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 환자군에 대해선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문제의 약 '프렘프로' 국내시장 21%나 차지
이번 미 국립보건원(NIH)의 연구대상이 된 프렘프로는 미 와이어스사가 개발한 대표적 복합호르몬제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상품명 프레마린)과 남성호르몬의 합성제제인 프로제스틴(상품명 프로베라)이 각각 0.625㎎, 2.5㎎씩 포함된다.
에스트로겐만 복용할 경우 자궁내막암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어 2가지 호르몬을 복합한 것. 쉐링 등에서 내놓은 복합호르몬제도 같은 성분을 포함한다.
프렘프로는 국내에서도 프리멜(한국와이어스)이라는 이름으로 시판돼 시장점유율이 21%나 될 정도로 널리 처방되고 있다.
프렘프로에 문제를 제기하는 측은 ▲프레마린이 말 오줌에서 추출한 에스트로겐이라 효능이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았고 ▲프로베라가 천연성분이 아닌 합성제제라는 점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유럽산 호르몬제 중에는 또다른 종류의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 호르몬역할을 하는 천연성분으로 만든 리비알 등이 선보이고 있으나 후발주자에 속한다.
또 릴리가 개발한 에비스타 호르몬제는 유방암 등 부작용이 없는 반면 효능도 약한 한계가 있다.
여에스더 클리닉의 여에스더원장은 “최근 일본에서는 동양인에게 에스트로겐을 0.3㎎씩 처방하는 저용량 처방과 프로제스틴을 3개월에 한번만 복용하는 요법이 연구돼 국내에 도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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