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 한 중견기업 회장실에 중년남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 회장님이시죠?” “그렇습니다만….” “저번 경제인 모임에서 뵌 D주택 사장 김성환입니다. 김홍업씨 친구요. 요즘 어려우시다고 들었는데 한번 역삼동 홍업씨 사무실로 들러주시죠.”김홍업(金弘業)씨의 기업모금 행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과 기업들에 따르면 대표적인 모금방식은 ‘주군’인 홍업씨가 술자리 합석 또는 개인사무실 제공 등의 방법으로 ‘집사’격인 김성환(金盛煥), 유진걸(柳進杰)씨의 기업체 접촉에 힘을 실어준 뒤 이들을 통해 간접모금하는 수법.
모금대상 기업은 ▦10대 그룹 등 대기업군 ▦경영위기에 빠진 중견기업 ▦2세 경영인이 CEO(최고경영자)로 있는 기업 등 3개 부류. 김씨가 부도위기에 놓였던 D건설에 스카우트된 경력을 앞 세워 부실기업을 ‘전담’했고, 유씨는 친형이 평창종합건설의 회장인 관계로 건설회사를 주로 뛰었다. 이들은 홍업씨가 주도한 경제인 조찬모임을 통해 업계사정을 파악한 뒤 약점이나 민원이 있는 기업들을 선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벌그룹은 홍업씨가 대부분 직접 챙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금단위는 한번에 3,000만~5,000만원이 주를 이뤘으나 대기업이나 민원이 있는 기업에게는 억대의 돈과 법인카드를 요구했다고 기업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들에게 불려간 한 그룹 임원은 “학벌이나 사회경력상 김씨와 유씨가 무슨 힘이 있었겠느냐”며 “그저 홍업씨가 뒤에 있으니 피해를 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돈을 건넸다”고 털어놓았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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