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좁은 방. 벽에 매달린 액자에는 누렇게 변색된 사진이 덕지덕지 들어있고, 구석에는 커다란 흑백TV와 앉은뱅이 책상, 철제다리 재봉틀이 놓여있다.바닥에는 볼펜 몸통에 끼운 몽당연필과 구식 다리미. 아침이면 동네 확성기에서 ‘새마을 운동’ 노래가 울려 퍼지는 전형적인 1970년대 풍경이다.
1일부터 방송중인 KBS 1TV 일일드라마 ‘당신 옆이 좋아’(극본 정성희, 연출 이성주)가 아기자기한 70년대 풍경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70년대 청계천 광장시장을 무대로 실향민 가족들의 삶의 애환과 사랑을 그리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사실적 소품은 필수.
당시 사용하던 교과서나 미닫이 장롱 놋대야는 물론 거북선 장미 도라지 등 담배 케이스까지 소품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소품을 담당한 곳은 KBS 아트비전. 국내외 의상 4만여점과 장신구 3만여점을 소장한 국내 방송사 최대의 ‘창고’이다.
호피, 하회탈, 놋화로부터 영국공산당 깃발, 박정희 사진 액자, 일제시대 인력거까지 없는 게 없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별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확실한 과거도, 현재도 아닌 70년대 소품이 오히려 구하기 힘들었던 것.
대표적인 것이 담배. 사내 공고를 통해 현물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패했다.
제작진은 고민 끝에 역사책에 실린 담배 사진을 컴퓨터로 스캔해 실물크기로 확대한 다음 지금의 담배에 붙이는 공을 들였다.
달력 역시 여배우들의 과거 사진을 포토샵(컴퓨터 그래픽 저작도구)으로 작업해 지금의 달력에 붙이는 편법을 활용했다.
그 덕분에 ‘당신 옆이 좋아’는 사람만 70년대도 돌아가는 어색한 드라마로 비춰지지 않게 됐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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