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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산문집 '안쪽으로의 여행' / 안쪽세상 보니 가슴한켠 쓸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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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 산문집 '안쪽으로의 여행' / 안쪽세상 보니 가슴한켠 쓸쓸

입력
200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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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부터 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물은 안쪽 세계를 갖고 있다.”소설가 서영은(59)씨가 산문집 ‘안쪽으로의 여행’(바다출판사 발행)을 출간했다.

새 산문집에서 서씨는 “소설이라는 역동적 장르에서는 행간 속으로 파묻혀 버린 나직한 속삭임 같은 이야기를 산문으로 쓴다”고 했다.

사진작가 탁인아씨가 찍은 40여 장의 흑백 사진이 나직한 속삭임과 동반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안쪽이 있음을 알게 된 작가는 그것을 살그머니 들여다보기로 한다.

항아리의 안쪽, 말린 고구마 줄기의 안쪽, 사진 판넬의 안쪽, 빈 집의 안쪽… 모든 안쪽에는 추억이 있다.

어머니는 딸을 장독대로 데리고 가서 항아리 뚜껑을 여닫는 법, 장을 떠내는 법, 떠낸 뒤 뒷마무리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대학시절 좋아했던 과 선배는 여자의 집을 찾아와 기다리면서, 먹으려고 말리던 고구마 줄기를 지근지근 밟았다.

가전제품 세일즈맨인 동생은 한때 판넬 속 영화 사진 같은 근사한 예술 영화를 만들고 싶어했다.

우물 안에 빠져 죽은 시체가 있다는 빈집에 들어간 꼬마는 또래 아이가 읽었을 법한 책과 신었을 법한 고무신만 찾아냈다.

오래된 기억은 가슴이 아리다. 너무 많이 슬프지는 않지만 쓸쓸한 심정이 된다.

‘책장을 넘긴 곳에는 여백에 아이가 연필로 그린 누군가의 얼굴 그림이 있었다. 그러자 정체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금방 누군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나올 것 같은데 아무도 없다는 것이 이상했다. 사람이 살던 흔적이 이토록 남김없이 부서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특별히 애잔한 것은 함께 살던 사람과의 추억이다. 그는 9년 전 남편인 소설가 고(故) 김동리가 투병 중이었을 때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자전에세이 ‘한 남자를 사랑했네’를 펴냈었다.

‘그 집엔 세 식구가 살았다. 나이 많은 노인과 30년 연하의 젊은 아내, 그리고 부엌일을 하는 할머니. 함께 있는 것은 아내였으나, 남편의 기억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전처였다.’

그 남편과 아내가 어느 순간 서로의 생활 리듬에 섞여 들었다고 작가는 돌아본다. 삶의 안쪽 세상을 보다가 문득 발견한 자신의 안쪽 기억이다.

‘우리도 뜰에 해바라기를 심어볼까? 나중에 씨앗을 받아둬야겠어요. 부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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