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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40)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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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40)마라

입력
2002.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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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기인 1793년 7월13일 급진주의적 산악당의 지도자 장 폴 마라가 파리의 자택 욕실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50세였다. 마라를 척살(刺殺)한 사람은 산악당의 독재를 증오하던 25세 여성 샤를로트 코르데였다.코르데는 즉시 체포돼 나흘 뒤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마라의 이 센세이셔널한 죽음은 3개월 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화 ‘마라의 죽음’(벨기에 브뤼셀 왕립 미술관 소장)에 담겨 회화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스위스 뇌샤텔에서 태어난 마라는 보르도와 런던에서 인술을 연마한 의사였다. 프랑스 혁명 이전부터 ‘노예제도의 사슬’(1774) 등의 저술을 통해 구체제의 절대주의적 정치를 비판하던 그는 1789년 7월에 혁명이 터지자 두 달 뒤 ‘민중의 벗’이라는 잡지를 창간해 혁명의 급진화를 북돋았다.

산악당 출신의 국민공회 의원으로서 그는 과거와 완전히 절연된 프랑스를 꿈꾸었다. 마라가 꿈꾼 새로운 프랑스는 모든 특권층과 기생계급이 사라지고 소농(小農)과 프티부르주아 등 기층 민중의 삶이 고루 넉넉해지는 사회였다.

그러나 이 순결한 혁명가는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이나 반혁명파와 동료들에게도 엄격해서 도처에 적을 만들어냈다. 마라의 그로테스크한 죽음은 그가 너무 강퍅한 원칙주의자였던 것과도 관련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는 오래 산 편이다. 그 뒤 1년 사이에 그의 산악파 동지들인 당통, 로베스피에르, 생쥐스트 등이 내부의 숙청이나 반혁명 쿠데타로 처형됐을 때 이들은 모두 30대였다.

마라를 살해한 코르데는 비극작가 코르네유의 후손이다. 루소의 애독자였던 그녀는 혁명에 열광했지만, 1793년 산악파의 독재체제가 완료되자 환멸 끝에 온건파 지롱드당 지지로 선회했다.

뒷날 시인 라마르틴은 그녀를 ‘암살의 천사’라고 불렀다. 고종석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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