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라디오국의 최상일(崔相一ㆍ45) 책임 프로듀서(CP)는 ‘민요에 미친 사람’이다. 1989년부터 방송되는 ‘한국민요대전’을 기획한데다 직접 전국을 돌면서 수많은 민요를 발굴했기 때문이다.그런 그가 민요 150여편과 라디오에서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모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돌베개 발행)라는 책을 냈다. 2권으로 된 책은 민요를 만들고 부른 선조의 생활과 풍속을 담고 있으며 민요를 녹음한 CD도 제공한다.
민요에 관심을 가진 것은 방송국 입사 후. 81년 PD로 입사한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클래식과 팝, 가요 소개에 보냈는데 음악을 다루면서 자연스럽게 민요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고. 결국 민요 프로 신설을 제안했는데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졌다.
‘한국민요대전’은 매일 새벽 5시55분부터 5분간 진행되며 민요와 아주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 40초짜리 스팟 프로도 하루 6회씩 나간다.
직위가 올라 가면서 지금은 현장을 누비지 않지만 한창 때는 민요 녹음을 위해 한 달에 절반 가량을 지방에서 보냈다.
마을 이장을 대상으로 그 지역에 민요가 있는지, 민요 부를 사람이 생존해있는지를 조사하고 사전 답사를 거쳐 녹음에 들어간다. 지금까지 다닌 곳은 군 단위로 볼 때 전국의 절반 정도.
민요 때문에 만난 할아버지 할머니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90년 광주시 광산구 송학리 마을에 갔었어요. 그때 77세였던 최계선 할아버지는 기억력도, 목청도 좋았습니다. 모 심는 소리, 논 매는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할머니가 흐뭇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지켜보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금실이 좋아보였어요. 저렇게 하면 백년해로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해 추자도에서 멸치잡이 소리를 녹음할 때는 할아버지들의 호탕함에 반하기도 했다.
“술 한잔씩 걸친 할아버지 10여명이 목청껏 ‘어야디야…’ 노래했습니다. 할머니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지요.”
돼지 잡는 곳도 있었다. “저희를 위해 돼지 잡는다면 극구 말려야죠. 하지만 민요 녹음을 계기로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데 어찌 말리겠습니까. 저희도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해 같이 즐길 수 밖에 없었지요.”
그는 어느 새 민요 전문가가 돼 지역별 차이까지 찾아낸다. 강원도에는 밭 갈 때 노래가 따로 있는데 다른 지역에는 없다. 경상도는 모심을 때 하는 노래가, 전라도는 논 매는 노래가, 충청도는 벼 수확하는 노래가 발달했다고.
어느 민요에 ‘길가는 선비는 의복이 날개요, 우리 농부는 소리가 날개라’는 구절이 있다.
“농부들은 모를 심고 논을 맬 때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이때 일을 가장 잘 아는 이가 노래를 부르지요. 이쯤에서 쉬자거나 하는 지시 내용이 모두 노래에 들어있습니다.” 그가 민요를 진정한 예술로 보는 것은 민요는 이처럼 생활과, 노동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민요는 위기에 처해 있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나가 계승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현실이 누구보다 안타깝다.
“음악인과 민속학자들은 민요를 등한시한 점에 반성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민요를 창작과 공연의 소재로 끊임없이 되살리고 활용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제가 만든 방송과 책이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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