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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야기] (12)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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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이야기] (12)진주 대평리 옥방 유적

입력
2002.07.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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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에게는 누구나 깊은 회한이 남는 발굴지가 한, 두 곳쯤 있게 마련이다. 내게는 경남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옥방(玉房) 마을 유적이 그런 곳이다.이 곳은 기원전 500년경에 형성된 국내 대표적 청동기 시대 유적지로, 남강댐 보강공사로 수몰 위기에 놓여 1996년부터 긴급 구제발굴이 이뤄졌다. 필자는 97년 1월부터 3년간 발굴에 참여했다.

98년 8월16일, 지리산 자락 돌무덤 발굴에 앞서 진혼제를 지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며칠간 폭염이 계속된다고 해 택일했는데 하늘은 아침부터 비를 뿌렸다.

다시 날을 잡기도 어려워 우중에 학생들과 천막을 치고 제상을 차려놓으니 제사 집전을 부탁한 지곡사 주지 지담 스님이 보살 손에 수박 한 덩이를 들려 당도했다.

문화재연구소 관계자 등 서울 손님들도 도착해 막 제사를 모시려는데 억수같이 퍼붓던 빗줄기가 뚝 그치는 것이 아닌가.

스님의 염불과 독경이 끝나고 퇴주를 무덤 위에 뿌리고 음복을 하고 잠시 후 다시 소나기가 퍼붓자 처음 발굴지에 와봤다는 보살은 “인디아나 존스의 기적은 이곳에도 있다”고 한마디 했다.

작은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 발굴한 무덤은 참으로 처참한 몰골이었다.

맨 위에 얹은 덮개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지만 어른 머리 크기만한 강돌이 둥그렇게 덮여있는 것을 들어내고 나니 서너장의 판석이 길게 깔려 있어 아무도 손대지 않은 ‘처녀분’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얼마쯤 파내려가자 10여년 전 유행한 아이스바 포장비닐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굴꾼들이 아이스바를 사다 먹는 여유를 부리며 도굴을 한 것이다. 동쪽 석곽묘의 내부도 씻은 듯이 말끔했다.

그 다음 발굴한 석관묘 바닥에서는 인쇄된 상표 조각까지 나왔다.

진혼제를 지내며 무슨 유물이나 많이 쏟아져 나오라고 빈 것은 아니지만 무덤 5기가 하나같이 도굴된 것을 보고 난 뒤 그 허탈감이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몰될 무덤 돌이나마 보존할 요량으로 수습한 뒤 조사를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사단은 이 곳에서 여러 가지 뜻 깊은 체험을 했다. 큰 고인돌무덤부터 석곽묘 석관묘가 공존하면서 동쪽으로 전개되는 양상은 당시 위계질서를 짐작하게 했고, 무엇보다 여러 형태의 무덤 하부구조를 자세히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옥방마을 일대에서 청동기 시대 석기와 옥기(玉器) 제작 공방지를 발굴, 당시 분업화한 전문작업공방이 취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특히 옥돌을 갈아 각종 장신구를 만들던 옥방(玉房) 유적 발굴로 마을 이름의 기원이 청동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흥미로운 사실이 확인됐다.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형성돼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소중한 유적이 발굴 조사만 마친 채 물 속에 잠겨버린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더욱이 남강댐 수몰지구 발굴에 참여했던 16개 조사단이 제각기 발굴보고서를 내고, 출토된 유물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루 빨리 ‘남강댐 박물관’(가칭)을 지어 남은 흔적이나마 한데 모아 전시했으면 한다.

/이형구 선문대 고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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