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나름대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에 매혹당할 만하다.스티븐 스필버그가 스타 톰 크루즈와 만났다는 점을 제쳐놓더라도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 등 기발한 발상의 SF 작가인 필립 K. 딕의 원작이라는 사실이 꽤나 매력적이다.
▼어떤 이야기?
2054년 워싱턴 D.C. 예언자 3명이 살인 사건을 예언, 수사국인 프리크라임은 범죄가 일어날 장소에 특파돼 미래의 범인을 사전에 체포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을 구속한다는 점에서 논리적 모순을 안고 있어서 기구의 존속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치게 만든다.
시스템의 철저한 신봉자인 수사반장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자신이 살인자가 된다는 놀라운 예언에 직면한다.
도망자가 된 존은 기구를 없애려는 연방정부의 검사 워트워(콜린 파렐)가 예언을 조작했다고 단정, 무죄를 입증할 ‘소수 의견’을 찾기 위해 예언자 아가사를 납치한다.
▼놀라운 원작, 그보다 놀라운 스필버그식 상상력
단편인 필립 K. 딕의 원작은 미래 사회에서 벌어지는 범죄예방프로그램의 모순을 찾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존의 살인 예언은 음모가 아니라 예언의 시차에 따른 논리적 구성의 허점 때문이었던 것. 독자는 자연스럽게 논리적 추론을 통해 완벽해 보이는 예언 시스템의 결함을 찾아내게 된다.
발상은 산뜻하지만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2시간 25분짜리 장편 영화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한 일.
스필버그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원작에서 주인공의 이름과 살인 예고, 예언자 등의 아이템만을 발췌했다.
추적극이 많고, 음모가 개입됐다. 그래서 인색하게 말하자면 영화는 아주 고급스런 외피를 가진 형사물이나 추리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50년 후 펼쳐질 세상에 대한 스필버그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늘 물 속에 누워있으며 실핏줄이 비치는 창백한 얼굴의 예언자들, 여러 이미지를 결합해 살인이 일어날 현장을 찾아내는 존의 수사과정, 로케트 배낭을 메고 하늘을 나는 수사대원의 공중 전투 장면, 21세기형 캡슐 감옥 등은 최근 영화에 등장한 가장 화려하고, 볼만한 장면이다.
스필버그는 존이 신분이 인식되는 안구를 바꾸기 위해 수술을 받는 장면에서 은근히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의 장면을 인용함으로써 SF 영화의 대선배에 대한 예우도 잊지 않았다.
▼스필버그의 영원한 화두이자 한계 ‘가족애’
원작에서 중년의 국장 존은 젊은 아내와 차기 국장감 워트워의 사이를 의심한다. 가족내의 불신이 기본 전제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스필버그의 열망은 대단한 것. ‘A.I’에서 부모 없는 로봇 소년과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부모간의 이야기를 그렸듯, 이 영화에서도 존은 가족애라는 핵심에 자리한다.
아들을 잃은 존과 어머니를 잃은 예언자 아가사의 협력은 이런 맥락에서 당연한 것이다.
이미 ‘A.I’에서도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았던 스필버그는 또 다시 가족주의를 들먹임으로써 지적인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아내가 감옥에 들어간 존을 탈옥시킨다는 설정이나 존이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인 상관 버기스(막스 폰 시도우)와 대치하는 상황도 우스꽝스럽거나 상투적이다.
그러나 영화 초반에 보여지는 범인 추적신이나 놀라운 상황 설정으로 이미 뇌는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후반부의 실망스러움은 그저 ‘2% 부족함’으로 치부하는 관객들이 많을 듯하다.
지적인 이미지가 강해 미국의 평단에서는 열광하는 반면 미국서의 흥행 기세(6월21일 개봉)는 지난해 ‘A.I’를 못따르고 있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박은주기자
jupe@hk.co.kr
■영화속에 나타난 미래상
2054년. 자기 부상 자동차가 높게 솟은 빌딩 벽을 타고 달리고 차가 멈춰 선 곳은 현관이 아닌 거실 창가. 공중에 서 있는 차에서 내려 바로 거실로 들어와서는 투명 디스켓에 보관한 이미지를 3D 영상으로 즐긴다.
SF 영화는 미래상을 보여주는 창(窓).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보여주는 미래상은 최첨단 기기의 전시장. 건물 벽을 타고 오르며 수평, 회전 이동이 가능한 자기부상자동차는 ‘배트맨과 로빈’ ‘아마겟돈’의 소품을 만들었던 자동차 디자이너 헤롤드 벨거가 일본 토요타사의 렉서스 자동차 이미지를 합쳐 만들었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컴퓨터 거미인 로보틱 스파이더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이미지를 만든 뒤 실제 거미의 뛰는 소리를 채집, 릴테이프와 치실을 이용해 효과음을 삽입했다.
영화에서 지하철 승객들이 보는 신문도 이채롭다. 지하철 승객이 긴급뉴스로 들어온 동영상 뉴스를 통해 존의 도주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에서 나오는 신문은 USA 투데이. 판형은 지금과 같지만 사진이 동영상으로 움직이는 게 특징. 신문과 TV 뉴스를 합친 것 같다.
영상을 저장하는 투명 디스크, 미래에 일어난 살인 사건을 검색하는 투명 디스플레이 판 등 미래의 전자 기기는 주로 투명이 될 것이라는 게 스필버그의 생각.
총알 대신 엄청난 기압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압총(바인드폼), 죄수를 가두는 캡슐형 감옥은 새롭지만 조끼처럼 입으면 날게 되는 로케트 조끼는 ‘스파이 키드’, 미녀와의 멋진 여행 등 가상현실을 즐기는 오락실은 ‘토탈 리콜’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가장 멋진 발명은 인간의 뇌를 스캔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예언자의 뇌를 스캔해 영상으로 보여준다는 설정은 영화를 존재하게 만든 기본 전제. 그러나 결국 ‘프리크라임’이 해체됐듯 비록 범죄자라 해도 인간의 행위를 통제한다는 가설은 미래에도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발상으로 치부되고 있다.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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