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대학가에서 불렸던 이른바 ‘운동권 노래’들이 잇달아 대중 음악으로 새롭게 다시 불리고 있다.4월 3인조 혼성 힙합 그룹 거북이가 ‘사계’를 힙합과 하우스 버전으로 리메이크 해 화제가 되었고 6월말까지 방송되었던 현대해상의 CF에서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원곡에 어린이들의 목소리가 들어간 ‘그날이 오면’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최근에는 역시 힙합 가수인 MC 스나이퍼가 안치환의 곡을 샘플링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인터넷에서 인기를 얻은 뒤 음반으로 나왔다.
세 곡 모두 80년대 학번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빅 히트곡. 밀리언 셀러가 된 노찾사 2집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의 대표곡들이기도 하다.
다시 듣는 노래는 그 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반갑다. 노래가 불렸던 시절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인지도를 최우선으로 하는 광고에서 역시 80년대 자주 불렸던 ‘천리길’(유공 엔크린)에 이어 ‘그날이 오면’이 쓰인 것은 소비자에게 주는 향수를 이용하겠다는 의도에서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이미 보편성을 획득한 노래로 월드컵 16강에 오르는 그 날에 대한 기원과 가장 잘 어울려 골랐다”고 말한다.
가요는 광고 음악에 비하면 재해석이 포인트다. MC 스나이퍼와 거북이는 모두 홍대 앞 언더 클럽 출신. MC 스나이퍼는 “안치환의 노래가 평소 내 생각과 기본적으로 같아서 노래했다”고 한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내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라는 원곡의 노랫말에 이어 ‘7,80년대는 빈곤한 내 부모 살아온 시대 그때의 저항과 투쟁 모든 게 나와 비례할 순 없지만 길바닥에 자빠져 누운 시대가 돼가는 2000년대 마지막 꼬리를 잡고 억압된 모든 자유와 속박의 고리를 끊고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나는 예술인으로 태어날 수 있는 진짜 한국인!’이라고 빠른 랩을 쏟아낸다.
방송 심의에 걸렸을 만큼 어둡고 거친 랩 뒤로 원곡의 서정적인 선율이 잔잔히 깔리며 원곡의 상징성을 새롭게 부각시킨다.
샘플링 사용을 허락 받기 위해 찾아간 안치환도 즉석에서 오케이 했고 함께 공연도 했다.
거북이의 ‘사계’는 메시지 보다 분위기에 중심을 두었다. 묘하게 사람을 자극하는 원곡의 맛을 여성 보컬과 랩, 남성 랩을 엇갈리며 더욱 강조했다.
밝고 가볍고 독특하다. 특히 요즘 부르는 하우스 버전은 민중 가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빠른 댄스 리듬으로 클럽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때문에 ‘사계’는 원곡을 모르는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인기다. 미싱, 공장 같은 원곡 가사의 단어는 이들에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맥락이다.
거북이의 홈 페이지 게시판에는 이 곡이 공장에 갇힌 어떤 아이에 대한 노래가 아니냐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사람들까지 있을 정도다.
‘사계’를 편곡한 거북이의 남성 멤버 터틀맨은 “예전에 불리던 좋은 노래들을 요즘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광야에서’도 언제가 불러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원곡을 아꼈던 사람들에게는 거북이의 재기발랄한 리메이크가 황당하거나 얄밉게 보일 수 있지만, 나름대로는 원곡에 쏟아졌던 애정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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