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은 오랫동안 2000년 인구센서스가 발표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인구 구성에 대한 명확한 그림이 드러났다.충격적인 것은 라틴계가 흑인 인구를 넘어서 최대 소수민족이 됐다는 사실이다. 라틴계는 3,550만 명으로 흑인 3,420만 명을 웃돌았다. 비록 인구학자들이 예견해 온 일이기는 하지만 20세기가 지나기 전 명확한 수치로 드러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 한가지 관심을 끈 것은 전에 없던 인종의 범주가 센서스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백인, 인디언-흑인계 라틴인 등 서로 다른 인종이 복합된 다인종(Muti-Racial) 범주이다.
물론 전체 인구의 4%만이 스스로를 다인종인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변화의 잠재력은 막대한 것이다.
최대 소수민족의 자리바꿈, 그리고 다인종 집단의 등장 등 두 가지의 변화는 미국 인종문제의 틀을 바꾸고 있다. 변화의 기점은 출신국 표시제를 폐지한 1965년 이민법 개정이다. 이후 미국의 도시지역에서는 다른 인종간 교류로 만들어진 공동체들이 나타났다.
시카고의 업타운이나, 뉴욕의 선셋파크나 잭슨 하이츠 등 곳곳에서 새로운 동네가 생겨났다. 미국 서부에서는 지난 100년 간 흑인과 라틴, 아시아인종 간의 교류가 진행돼 왔다. 하지만 이렇게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난 적은 없었다.
이런 다인종 공동체는 미국인들의 문화 및 전통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인종 공동체란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 타운이나 리틀 도쿄처럼 한 인종으로 이웃들이 채워지는 경우를 말했다.
65년 이전 미국으로의 이민의 5분의 4는 유럽인이었으나 이후에는 신참 미국인의 3분의 2가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왔다. 당초 이 법은 미국 전체 인구분포가 반영되도록 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미국의 정체성, 집단 간의 역학을 영원히 변질시켰다.
미국 선거와 정치에서 중요한 뉴욕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센서스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에는 더이상 인종적 다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라틴계는 2040년까지 이 주의 지배적 다수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라틴계는 이미 LA 카운티의 44%를 차지하고 있으며 2010년까지는 최다수가 된다.
도시 지역의 다양한 인종들은 같은 동네에서 북적이며 정치적 힘과 자원들을 놓고 경쟁을 하게 됐다. 불꽃이 튀면 사회단체끼리의 거대한 충돌이 폭발하게 돼 있다.
91년 LA경찰국의 경관 4명이 로드니 킹이라는 소년을 오토바이에서 끌어내려 폭행을 가했다. 92년 4월 30일 이 경찰관들에 대한 무죄 판결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인종 폭동을 촉발시켰다.
인종과 계급 간 갈등, 경찰 공권력에 대한 분노, 반 외국인 정서가 한데 뒤섞여 폭력화한 것이다. 그 결과 52명이 사망했으며 2,283명이 다쳤고 1만 4,000명이 체포됐다.
학계와 언론은 폭동의 초점을 한흑(韓黑)갈등에 모았다. 그런데 폭동에서 가장 많이 체포된 인종이 라틴계라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했다. 코리아 타운의 상점을 습격한 폭도는 대부분 그곳에 사는 라틴인들이었던 것이다.
체포된 사람들 중 43%가 라틴계였고, 흑인은 34%였다. 또 파괴당한 상점들 가운데 30~40%도 라틴계 소유였다. LA 폭동은 미국 인종문제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시작이었으나, 당시 학자들은 중요한 흐름 가운데 하나를 간과했다.
이 폭동이 일어난 후 미국에서는 소수민족의 정체성과 주장을 권리로서 인정하기 위해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이라는 말이 쓰여지기 시작했고, 논쟁을 촉발했다.
그때까지 미국인이 갖고 있던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라는 자기 이미지는 신참자 이민들이 미국의 지배적 문화, 즉 와스프(WASP) 문화에 동화해가는 과정을 상정하고 있었다. 다문화주의의 주창자인 로렌스 레빈은 이 과정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에 따르면 이민들은 초기의 고난을 극복하는 동안 민족적 자각심이 도리어 강화한다. 그런데 각종 공교육을 통해 미국의 지배적 가치로 녹아들어가도록 강요당하며 모순과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홀린저는 더욱 도발적인 견해를 채택해 개개인이 스스로의 인종을 선택하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근거로 거론한 것이 인종 간 통혼으로 나타난 다인종 집단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다인종 집단에 대해서는 과거 비극적으로 묘사됐던 뮬라토(흑인과 백인의 혼혈)와는 달리 미국의 인종문제를 극복할 기회로 이상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특히 인종 간의 혼합은 네오 리버럴 학자들이 좋아하는 주제다. 그들은 새로운 미국을 건설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기대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93년 타임의 표지일 것이다. 타임은 이민에 관한 특집호에서 여러 인종의 얼굴을 골고루 등장시키던 관례에서 벗어나 컴퓨터로 올리브색 피부를 가진 버츄얼 여성을 만들어 등장시켰다.
출신국을 알 수 없는 아름다운 가상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미국인에게 불안감 대신 안도감을 주려 했던 것이다.
현실세계에서의 사례는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다. 흑인과 태국계 부모에서 태어나 가장 백인적인 스포츠를 제패한 그는 미래의 다인종 사회의 대변인을 찾던 기업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나이키 등 다국적 기업들은 그를 미국 내에서는 흑인의 뿌리를 강조하는 판촉에 쓰고 아시아권에서는 아시아적 배경을 강조하고 있다. 다인종 집단은 세계화한 시장에서 기업들의 요구에 부응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같은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게 인종 간 혼합은 결코 특권을 파괴하지는 못했다고 말해주고 있다. 멕시코와 미국 남부의 다수 집단인 메스티조인(인디언과 백인의 혼혈)들의 지위를 보면 알 수 있듯, 혼합인종의 확산은 인구분포의 변화는 가져올 수 있을지언정 백인의 지위에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인종문제를 곧 흑백문제와 노예제도의 유산으로만 인식했던 학자들이 인종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어떤 경우든 2000년 센서스의 해석은 앞으로 미국의 정치과정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정치에서 인종문제는 불평등을 시사하는 것으로 가급적 피해야만 하는 주제였다. 하지만 라틴 인구의 증가와 새로운 인종 범주의 등장은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었다.
라틴계의 인종적 자의식은 기존의 규범들과는 다른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인종관련 법과 정책은 흑백간 2분법에 근거한 것이었지만, 라틴계 미국인들은 이같은 틀 속에 들어가기를 거부하고 있다.
센서스에서 한 멕시코계 학생은 아버지를 백인이라고 적은 반면 자신은 ‘기타’라고 적었고, 어머니 항목에는 인디언과 라틴계 모두를 기입했다.
패트릭 모이니헌과 네이던 글레이저가 공저한 저서 ‘용광로를 넘어서’에서 도달한 결론은 미국의 국민성이 형성되는 도중에 있고 최종적으로 어디로 갈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인종뿐 아니라, 계급과 성, 그리고 민족 등의 벽을 모두 넘어서야 하며 이런 요소들이 모여 미국 사회의 특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 산체서 남가주(USC)대학 역사학과 교수ㆍ미국 아메리카 학회장
■아메리카 핸드북 / 10년새 60%증가 유권자 라틴파워
“11월 중간 선거를 시작으로 앞으로 20년 동안 미국 정치는 히스패닉 유권자의 성향에 달려 있다.” 뉴트 깅그리치(공화당) 전 미국 하원의장의 최근 발언은 미국 내 소수 인종 사회에서 히스패닉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ㆍ남미 사람을 일컫는 히스패닉은 최근 10년 동안 무려 60%나 늘었고 전체 435개 선거구 중 4분의 1이 넘는 122개 선거구에서 13%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이들의 75% 이상이 서부와 남부에 몰려 있어 전국 최다인 캘리포니아(하원 52석), 텍사스(30석) 같은 초대형 선거구에서 입김은 절대적이다. 텍사스는 유권자의 60%가 히스패닉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치인들은 이들의 선심 사기에 혈안이다. 2000년 대선 운동 중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동생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의 아들을 자주 데리고 다녔다. 조카가 어머니에게서 멕시코 혈통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스페인어로 자주 연설한 것은 물론이다. 심지어 부시가 지난해 라디오 주례 방송에서 멕시코 전승 기념일(5월 5일)을 기념하며 영어와 스페인어로 연설하자 민주당도 부랴부랴 주례 라디오 방송을 두 가지 언어로 내보내는 일까지 벌어졌다.
워싱턴 정계의 스페인어 학습 열기도 갈수록 뜨겁다. 어학 테이프로 자습하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히스패닉계 친구를 사귀어 개인 교습을 받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강사를 초빙해 의사당에서 스터디 클럽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2004년 대선의 민주당 유력 경선 후보인 리처드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지난 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하지만 ‘라틴 파워’는 인구 증가를 배경으로 한 ‘선거 파워’에 그친다. 정ㆍ관계에 진출한 유력 히스패닉은 드물기 때문이다.
2,200명에 이르는 역대 미국 주지사 가운데 히스패닉은 단 4명뿐이었고 현 주지사 중에는 한 명도 없다. 11월 있을 중간 선거에서 36명의 주지사가 바뀌지만 히스패닉으로 유력한 주지사 후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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