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하녀, 그것도 아주 비천한 하녀.’ 현대시의 개척자이자 탁월한 미술비평가이기도 했던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는 1859년 쓴 한 비평에서 사진을 이렇게 비유했다.사진은 화가나 조각가의 관찰 대상을 기계적으로 복제해주는 편리한 수단일뿐, 그 자체 순수예술과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제 사진과 그 확장인 영상은 단순한 기록물의 차원을 넘어 현대미술의 요체로 부상하고 있다.
가나아트센터가 12일부터 8월 4일까지 ‘지금, 사진은’을 주제로 여는 제2회 사진ㆍ영상 페스티벌은 사진의 예술로서의 근거와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기획이다.
지난해 열린 1회 행사가 20세기 사진 전반을 포괄했다면, 올해는 세계 정상급 작가들의 1990년대 이후 근작을 선별해 사진예술의 현재를 집약해 보여준다.
참여 작가들은 한국의 배병우 구본창 김수자를 비롯한 독일의 토마스 러프, 영국의 길버트 앤 조지 등 8개국 18명으로 100여 점의 작품이 나온다. 모두 각종 국제 비엔날레와 권위있는 예술공모전 등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작가들이다.
본 전시는 ‘개념’ ‘아우라’ ‘확장’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된다.
‘개념’은 순간 포착이라는 전통적 기능보다는 연출 과정과 피사체를 통해 작가의 사고를 표현하는 현대사진의 특징을 보여준다.
행위예술의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이탈리아 작가 바네사 비크로프트, 축구장을 비롯한 공공 장소의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현대인의 고독을 찾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거스키, 소비문화의 허구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스위스 작가 다니엘 뷰에티 등이다.
두번째 주제인 ‘아우라’는 회화나 조각, 설치작업 같은 효과를 내는 다양한 기법의 사진작업을 묶었다.
현대사진은 서술적이기보다는 어떤 분위기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감성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제주 오름 등 한국의 자연을 서정적으로 포착한 배병우, 몽환적 효과로 16세기 서구회화 같은 이미지를 사진으로 표현하는 네덜란드 작가 튠 훅스, 여배우 마릴린 먼로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등의 포토모자이크(photomosaic)의 창시자로 유명한 미국의 젊은 컴퓨터사진가 로버트 실버스 등의 작품이 선보인다.
세번째 주제 ‘확장’에서는 비디오 컴퓨터 등 다양한 뉴미디어와의 결합을 통해 예술로서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진의 위상을 짚어본다.
한국의 전통적 생활소품인 이불보를 이용한 ‘보따리 설치’ 작업으로 국제적 주목을 받은 김수자의 퍼포먼스 비디오와 피셔스푸너, 토니 아워슬러, T. J. 윌콕스 등 한층 급진적인 미국 작가들의 영상을 볼 수 있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과 인근 토탈미술관 전관에서 함께 열리는 본 전시 외에 다양한 행사도 마련됐다.
평론가 이영준 최봉림 등이 참가하는 세미나 ‘현대사진의 예술적 근거’(19일)가 열리고, 미국 작가 로버트 실버스가 방한해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26일)도 마련된다.
12~21일에는 디지털 사진영상 쇼, 카메라 및 포토북 페어도 열린다.
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등 20세기 대표적 예술사진의 거장 9명의 생애를 각각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와, 국내 젊은 독립영화 감독 출신인 박기형 문승욱 송일곤의 영화도 상영된다. 문의 (02)720-1020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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