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7일 서해교전을 ‘북측의 악의적 도발’로 규정하면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북한 수뇌부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지 않았다. 대신 교전의 책임자로 북한을 통칭함으로써 정부가 상정하는 사후 수습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게 하고 있다.정부로서는 미국 군사정보 등을 감안한 합동참모본부의 조사 결과 이번 사태에 북측 최고위층의 지시가 있었다는 확증을 얻을 수 없었던 만큼 북한 정권을 직접 자극할 경우 필요 이상으로 남북 긴장이 고조되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로써 정부는 북측에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을 요구하는 선에서 사실상 사태수습을 하고 나선 셈이다.
정부의 결론은 확전을 원하지 않는다는 북측의 메시지와도 무관하지 않다. 북측은 교전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면서도 “뜻밖의 교전으로 양측에서 인명 손실이 있었다”면서 1999년 6월 연평해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북측은 월드컵 성공 개최를 축하하는 서신을 보냈는가 하면 경수로 요원 25명을 예정대로 파견하는 등 교전이 평양 지도부가 의도한 것이 아님을 우회적으로 알렸다.
정부는 연평도 어민들의 월선 논란, 보수층의 햇볕정책 폐기 요구 등 교전사태로 빚어진 내부 갈등도 조속히 차단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나친 대북 강경여론의 득세는 임기 말 대북정책의 혼선과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어져 아시안게임 등 국가적 행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남북 당국간 대화가 재개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냉각기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7차 장관급 회담을 열어 정치적으로 긴장 국면을 일소할 수도 있겠지만, 남북 모두 교전사태의 파장이 가라앉고 안팎으로 신뢰를 회복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 상황이다.
정부는 그러나 대북 식량지원 문제 등 남북간 대화 수요가 있는 만큼 당국간 대화 단절이 장기화할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교전 사태의 앙금이 가라앉을 경우 민간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는 8ㆍ15 평양 남북공동행사나 9월 북한 축구대표팀의 방한 계획 등을 촉매로 대화 재개를 타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특히 월말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에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참석할 경우 남북ㆍ북미 관계의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남측의 사과 요구를 수용할 리는 만무하지만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교류협력에 호응할 뜻을 내비친 만큼 긴장 국면이 서서히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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