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넘쳤다. 뜨거운 동포애도 확인했다.월드컵이 열렸던 6월 한달, 우리는 서울시청앞 광장, 신촌, 강남역 사거리 등 전국 어디에서나 사람의 채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로 잊고 살았던 이웃을 인지하는 시간도 가졌다. 이제는 ‘6월의 감동’을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보듬는 공동체 의식으로 승화시키는 과제가 남아있다.묵묵히 선행을 베풀며 다정한 마을을 가꾸는 사람들을 찾아 삶의 보람과 지혜를 배우는 자리를 마련한다./편집자 주≫
“어려운 이웃이 보여 도와주는데, 무슨 이유나 특별한 계기가 있겠습니까? 조금만 거들어주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40년간 전국을 돌며 끼니를 거르는 이웃들에게 쌀을 나눠주고있는 서울 일광사(중랑구 망우2동) 일광(日光ㆍ66) 스님은 ‘선행의 사연’을 묻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쌀 스님’ 일광이 전달하는 쌀은 한달에 20㎏포대 200개 내외. 월 400여명이 1인당 10㎏을 받고있다.
일광은 속명인 박영국(朴永國)씨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평소엔 승복도 입지 않는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느낄지도 모를 거부감을 의식해서다.
“부처님은 승려들에게 경전을 외울 것이 아니라, 경전대로 행동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부처님의 자비를 실현하는데 승복이 걸림돌이 된다면 벗어야지요.”
일광의 ‘이웃사랑’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북구 장위3동에 일광사를 세운 직후부터 선행을 시작했다. 틈나는대로 전국을 돌며 독거노인, 장애인 등에게 쌀을 전달해왔다.
“방방곡곡을 돌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고, 간첩혐의로 경찰서에 2번이나 잡혀갔습니다. 경찰관에게 아무리 사실을 설명해도 믿지 않아 70년대부터는 쌀을 전달할 때 같이 사진을 찍고 쌀 인수증을 받아서 보관해 왔어요.”
사진과 인수증은 ‘일광 대장정’ 제목의 스크랩북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지금까지 모은 스크랩북만 90권.
한 권 만드는데 들어가는 쌀값이 1,000만원쯤 돼 40년간 9억원 어치의 쌀을 보시해온 셈이다.
일광은 대처승이다. 속세때 아내는 그의 이런 행동을 견디다못해 일찌감치 떠났다. 일광의 아들이자 현재 일광사 주지 겸 대한불교법화종 감찰국장인 보혜(40)스님은 “정작 집에는 쌀이 없어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가지 못한적이 한두번 아니었다”고 귀띔했다.
보혜는 한달이면 10일 이상 절을 비우는 일광을 대신해 절 살림을 도맡고있고, 쌀을 모으는 일광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다.
보혜의 동생도 아버지를 모시고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일광 일가에게 ‘쌀 선행’은 어느덧 ‘패밀리 비즈니스’가 된 것이다.
일광은 ‘평범한 사람이 실천할 수 있는 이웃사랑법’을 소개했다.
“입속의 음식이나 콧속의 공기도 결국은 자연에 되돌려 줘야 하듯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되돌려 줘야 합니다. 불우이웃 돕기도 잠깐 내가 점유하고 있는 것들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지요.”
정영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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