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그룹은 화섬기업이란 이미지로 굳어져있지만 사실 컴퓨터에 뛰어든 것은 삼성전자나 삼보컴퓨터보다 앞선다. 1979년 일본 히타치와 기술제휴로 설립된 컴퓨터사업부는 이듬해 구미에 국내 첫 컴퓨터 전문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1년 뒤 나온 노트북도 컴퓨터처럼 효성이 먼저 만들었다.효성은 이 사업을 왜 주력으로 삼지 못했을까. 효성데이타시스템(HDS) 최병인(崔秉寅ㆍ40) 사장은 “마케팅의 실패”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선택은 앞섰지만 이를 뒷받침할 종합적인 시스템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효성이 이번에 또 하나의 선택을 했다.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정보통신(IT)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계열사 HDS와 ㈜효성 산하의 컴퓨터PU를 통합하는 것이다.
HDS가 컴퓨터PU를 흡수하는 형태로 이달에 출범할 통합법인은 종업원 800명, 매출 2,000억원의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앞으로 그룹의 두뇌역할을 맡게된다. 최 사장은 이를 IBM이나 휴렛패커드 NCR 등 세계적 정보통신 기업과 같은 맥락의 전략이라고 말한다. “제일모직 등 동종업계도 IT에서 성장엔진을 찾고 있으나, 이들과 달리 HDS는 하드웨어ㆍ소프트웨어에 동시 집중하는 점이 차이입니다.”
이 같은 토털솔루션은 IT분야에 선도적으로 뛰어들어 쌓인 노하우가 장점으로 특히 금융전산시스템 부문은 연륜이 20년에 달한다. 94년 독자개발해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 현금ㆍ수표자동지급기(ATM)는 미국시장에서 35%를 점유하고 있고, 최근 국민은행에 2,000대를 공급하기로 계약했다.
HDS는 이 같은 금융 부문의 강점을 통신으로 연결해 통신ㆍ인터넷 결제 등 다양한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네트워크 등에 매년 3조원을 투자하는 KT와 공동사업을 펼치고 아파트 관리비를 대행해주는 일도 추진한다. 작은 사업처럼 보이는 아파트 관리비 대행은 전국 300만 가구의 한달 관리비를 20만원씩 계산하면 월 6조원의 흐름이 발생하는 큰 사업. 기능이 여러 개로 나눠진 카드를 1개로 통합한 스마트카드는 조만간 업계를 놀라게 할 것으로 최 사장은 믿고 있다.
이를 통해 HDS는 시스템통합(SI) 동종업계의 순이익률 5%보다 높은 7~8%를 유지해, 장기적으론 현재 5%인 그룹내 정보통신 매출비중을 향후 20%대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효성그룹이 환란의 파고를 넘는데도 최 사장은 큰 역할을 했다. 96년 근무하던 맥킨지컨설팅에서 파견돼 효성그룹을 실사한 최 사장은 ‘비빔밥’ 사업을 수익성에 따라 정리할 것을 주문했다. 그의 아이디어에 따라 PU등 지금 그룹의 기본틀이 만들어졌고, 당시 그룹은 모든 계열사를 ㈜효성으로 묶는 처절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덕분에 효성은 이후 찾아온 환란을 무사히 피해가며 스판덱스 타이어코드 변압기 차단기 등 세계적 경쟁력을 지닌 품목을 늘려가고 있다.
이를 인연으로 최 사장은 30대 그룹 주요 계열사에 재직중인 전문경영인 중 최연소로 2000년 5월 효성에 영입됐다. 당시 조석래 그룹회장은 그를 삼고초려 끝에 영입, 조직에 파격을 일으켰다.
그의 꿈은 HDS를 5년 내에 세계적인 리딩 컴퍼니로 만드는 것이고 우선 ATM을 톱브랜드로 만들 계획이다. 회사들이 시행착오 끝에 ‘외부수혈’을 통해 그룹 컬러가 바뀌고, 긍정적 기업의 목표를 추구한다면 나쁠 게 없다는 소신도 가지고 있다. 부임 이후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조직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아들 입양을 스스럼없이 소개하며 기회가 되면 다시 입양하겠다는 말은 이 같은 그의 개방적 마인드로 읽힌다.
효성 내에서 최 사장은 기술과 경영을 함께 아는 경영자로 ‘효성 정보화사업 성공의 열쇠를 손에 쥔 사람’으로 통한다. 다양한 전공이나 이력만큼 숲과 나무를 한꺼번에 볼 줄 아는 IT경영자란 얘기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HDS는 어떤 회사
효성의 IT사업은 1979년 효성컴퓨터사업부로 시작된다. 이중 ATM 등 금융자동화기기를 만드는 컴퓨터 부문은 ㈜효성의 컴퓨터PU로 남아 연 1,3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효성데이타시스템(HDS)은 86년 시스템통합과 소프트웨어개발, 네트워크, 인터넷 사업을 위해 별도로 만들어졌다.
하드웨어는 컴퓨터PU에서, 소프트웨어는 HDS가 맡아온 것이 이번에 HDS 하나로 통합된다. 통합 신설법인은 특화한 IT솔루션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해 업계 최고의 수익은 물론 5년내에 그룹의 주축으로 부상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신설 HDS는 현재 금융전산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으며 ATM 등 금융자동화 시스템은 물론 금융권 종합통신망 구축 같은 네트워크 사업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특히 금융에 최근 통신, 카드기술까지 접목시켜 사업응용분야를 넓혀가고, 최근에는 휴대폰 바코드 인증기술을 이용해 돈을 인출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이를 통한 토털 금융솔루션에서 작지만 힘있는 글로벌 컴퍼니로 성장한다는 게 목표.
기술력은 국내보다는 해외에 더 알려져 있다. 98년부터 지금까지 3만여대의 ATM을 미국에 수출했고, 전세계 ATM 제조회사중 7위에 올라있다. HDS는 ㈜효성이 지분 40%로 대주주이고, 히다치와 개인주주들로 구성돼 있다. 내년에 거래소시장에 상장할 예정이다.
■최병인 사장은
▲1962년 전남 나주 출생
▲80년 서울 우신고,84년 서울대 항고우주학과 졸업
▲86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석사,기아차자동차 연구소 근무
▲92년 미 MIT대 기계공학박사,MIT초전도공학연구소 연구원
▲98년 앤더슨 컨설팅코리아 전략부문 이사
▲2000년 5월 휴성데이타시스템(주)대표이사
▲2002년 7월 통합 HDS 대표이사
▲부인 고란주(35)씨와 3녀1남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