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척화론으로 유명했던 청백리 김상헌(金尙憲ㆍ1570~1652)이 원로 대접을 받을 때 한 재상의 상담을 받았다.“안사람이 뇌물을 받는다는 비방이 있어 잘 살펴보았으나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김상헌은 대뜸 부인의 부탁을 들어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재상은 간혹 들어주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느냐 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떤 말도 들어주지 마시오.” 이렇게 타일러 보낸 뒤로는 아무 잡음이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 노인네 저 혼자 청백리 노릇 하면 되었지, 왜 우리 영감까지 본받게 하여 남의 가정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지 몰라.”
더 이상 베갯머리 송사가 통하지 않게 된 원인이 김상헌의 충고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 재상 부인은 청백리를 이렇게 원망했다.
속 좁은 아녀자는 뇌물 받는 재미를 빼앗긴 것이 억울하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설화집 동패(東稗)에 실려 있는 이 얘기는 권력자 부인의 탐욕이 부정 부패의 큰 원인임을 상기시켜 준다.
■경기감사 홍 섬(洪 暹)이 이조판서 안 현(安 玹)에게 꿩 두 마리를 보냈더니 판서가 물리쳤다.
“반찬이 하도 험하기에 보내드렸는데 물리치시니 황공합니다.” 뒤에 만난 자리에서 야속하다 했더니 안 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하면서 괘념치 말라고 했다.
그 정도를 뇌물로 본 칼 같은 이도(吏道)가 무섭다. 우리 역사에 청백리가 많지만 청사에 이름을 남긴 재상과 판서 방백의 일화를 들먹인 것은, 요즘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부부가 안타까워서다.
■허가가 반려된 건축물 허가를 받아내기에 혈안이 된 업자에게서 1억원을 받은 퇴직 지사의 부인이 엊그제 구속되었다.
신군부 실세이던 형부의 위세를 이용해 자신의 영달을 꾀했던 그 여자는 남편이 지사가 되고부터는 ‘부지사’ 노릇으로 유명했다.
업자에게 남편을 만나게 해준 것뿐이라면 1억원과 수천만원짜리 공짜 가구는 너무 비싸다. 허가가 적법했다는 남편의 주장도 궁색하다. 지사가 허가 건의 처리방향을 적어주었다는 것이 부하직원의 진술이다.
뇌물죄로 ‘큰 집’ 갔다온 지 얼마 안 되는 부부에게 청백리 교훈은 공염불인가.
문창재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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