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도 산엘 다녀왔습니다. 멀리 제주도로 갔었지요.남들은 주로 그 곳엘 쉬러 가지만 전 신혼여행 갔을 때를 빼놓고는 언제나 일하러 갑니다(하긴 그때도 비자림이나 식물원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기는 했습니다만).
제주도는 육지와 격리된 채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독특한 토양과 기후에 따라 고유한 식물상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나 찾아 볼 식물들이 무궁무진한 그야말로 식물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에 항시 찾아볼 식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참 힘들었습니다. 하루에 100mm 가깝게 내렸다는 비를 주룩주룩 맞으며 조사를 했는 데 숲에 얼마나 가시덤불이 많던지 팔다리는 긁히고 옷은 찢기고….
줄딸기, 찔레, 바늘엉겅퀴 등의 가시와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며 조사를 하다 왜 유독 한라산의 중간에는 가시덤불이 많은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가축을 방목하는 이곳에서 가시가 무성한 식물들은 가축들이 먹을 수 없게 되어 많이 남게 된 까닭입니다.
그러고 보니 식물들이 왜 줄기나 잎에 가시를 만드는지에 대해 저절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초식 동물들에게 먹히지 않기 위해서이지요.
식물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 각기 다른 데 때로는 잎에 소태나무처럼 쓰거나 여뀌처럼 매운 맛을 내고 또는 고약한 냄새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가시가 무성한 나무들은 잎이 맛있거나 연합니다.
찔레도 어린 순을 따다가 빨아먹으면 단 맛이 나고, 가시가 워낙 무서워서 귀신을 쫓게 만들었다는 음나무도 여린 순을 먹으면 아주 쌉쌀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입맛도 돋구고 몸에도 좋다지요? 아카시나무 잎도 가축들에게 영양가 있는 사료가 됩니다.
재미나는 일은 나무는 키가 커지고 나이가 들면서 가시가 점차 없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이유도 간단합니다.
동물들의 입이나 발에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닿으면 가시가 무성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린 줄기일수록 스스로를 보호하느라 가시가 유별나게 된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를 몹쓸 나무라고 베면 벨수록 무서운 가시를 가진 줄기가 무성하게 나와 극성을 부리지만 그냥 잘 두면 가시 없는 굵은 나무로 커나갑니다.
식물별로 어떤 기관이 변해 가시가 되었는지도 알 수 있는데, 장미처럼 가시를 잘라 톡 떨어진 것은 줄기에 탁엽이 변한 것이고, 아카시아 나무처럼 줄기에서 가시가 잘 분리되지 않는 것은 줄기 자체가 변해서 된 것이지요.
식물들은 이렇게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여러 전략을 짜내지만 항시 이러한 자연의 조절작용을 거스르는 것은 우리 인간인 듯 합니다.
향긋한 봄나물로 인기가 있는 두릅나무 순은 가시가 그리 무성한 데도 사람들은 잘도 잘라가 버려 올 여름 줄기를 올려 꽃을 피울 수도 없는 나무가 태반입니다.
꽃이 피면 참으로 풍성하고 아름다운 데 말입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이 두릅나무가 이 땅에서 사라질지.
아니면 새로운 전략으로 인간의 횡포에서 살아 남을지가 궁금해져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미래로 가고 싶어집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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