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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의약분업 성패판단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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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의약분업 성패판단 이르다

입력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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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열기에 묻혔지만 우리 의료계의 지각변동이나 다름없었던 의약분업이 실시된 지 이달초로 2년이 지났다.아직 한 정책의 공과를 따질 시점은 아니지만 의약분업의 성패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공식 견해로는 의료기관의 항생제나 주사제 사용이 감소하고, 약국 이용자들이 병원진료를 받게 돼 체계적 건강관리가 가능해지는 성과를 얻었다고 한다.

반면 의료계 일각에서는 약국의 임의조제가 사라지지 않고, 국민의 비용부담과 불편이 증가했기 때문에 실패한 정책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의약분업 정책의 성패를 판가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본다.

특히 약의 오·남용은 약을 선호하는 국민정서 때문에 약에 대한 국민의 태도가 변해야 막을 수 있고, 그에 따라 의사들의 약 처방관행이 변화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성패를 판가름하는 것은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의약분업은 약의 오·남용을 막고 의약(醫藥)을 분리시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정책이었다.

그래서 국민의 의료서비스 이용과 의·약사의 의료서비스 제공 관행에 질적인 변화가 나타날 때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어느 정도 추론은 가능하다. 의약분업 이후 나타났지만 흔히 주목하지 못한 세 가지 변화 양상이 있다.

우선 약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 약이나 주사는 많이 받으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병원은 주사 맞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도 있었다. 의약분업은 그러한 생각을 바꾸게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직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약이나 주사를 많이 주는 의사가 좋은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중대한 변화가 시작된 것임에 틀림없다.

둘째, 의사의 처방이 공개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의사나 약사가 주는 대로 약을 받아 사용하였다.

조제한 약의 이름도 모르고, 한 두 알쯤 빼고 먹어도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하였다. 권위주의적인 진료실 분위기 속에서 그게 무슨 약이냐고 묻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 처방 받은 약 이름이 모두 공개됐다. 궁금하면 언제나 약효와 성능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의사의 처방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환자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 동안 우리의 의료서비스는 환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였다.

처방의 공개는 비밀스럽게 보호되었던 의료 서비스가 환자에게 열리기 시작한 상징 같은 것이다.

셋째, 의사와 약사가 서로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그 동안 우리는 의사와 약사를 선택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의사는 진단과 처방만 하고 약사는 조제와 투약만을 담당한다. 일부 담합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사와 약사는 서로 경계하고 상대방을 감시한다.

의사는 약사의 임의조제를 밝혀내려 하고, 약사는 의사의 처방 오류를 잡아내고자 한다. 이것이 집단이익에서 출발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보다 안전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의사와 약사가 서로 전문가적인 협력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정책 성공의 증거가 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 의약분업이 기대했던 만큼의 단기적 효과를 내지도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국민과 의사, 약사의 의식과 행동은 일정하게 변화했고 그것은 의약분업 본래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즉 의약분업의 궁극적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하려면 의사와 약사의 대승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또 이들이 변화하지 않을 수 없도록 국민이 관심을 갖고 압력을 가할 필요도 있다.

/조병희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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