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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보르헤스 문학강의록 2편, 美독자 사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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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 보르헤스 문학강의록 2편, 美독자 사로잡아

입력
2002.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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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판된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강의록 ‘운문의 기술(This Craft of Verse)’이 미국 지성인 사이에서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보르헤스는 1967년과 68년, 하버드대에서 여섯번에 걸쳐 강의했다. 그 동안 강의 녹음테이프는 잃어버린 것으로 추정된 채 이 대학 도서관 구석에서 먼지에 덮인 채 잊혀져 있었다.

30년이 넘어서야 발견된 테이프에는 그의 목소리가 녹음 당시의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간직한 채 남아있었다.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등 오랜 논쟁을 거쳐 21세기에 들어선 이 시점에서 20세기 사상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중요한 의미라고 비평가들은 말한다.

강의는 시작(詩作)을 둘러싼 시의 존재론적 문제, 은유, 번역 등을 다루고 있으나 결국 보편적인 글쓰기의 문제로 귀착한다.

‘운문의 기술’이 출판되면서 역시 그의 강의를 엮은 ‘칠일 밤’(Seven Nights)도 주목을 받고 있다.

보르헤스가 77년 6~8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일곱번에 걸쳐 여름 밤에 한 강의를 모은 것으로 동양문학과 사상에 대한 그의 평소 관심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시력을 거의 상실한 보르헤스는 노트도 없이 기억에만 의존해 진행한 이들 강의에서 자연스런 어투로 문학에 대한 사랑을 내보인다.

호머에서 제임스 조이스, 돈키호테, 셜록 홈즈를 아우르는 폭넓은 언급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엿볼 수 있고, 실명(失明)까지도 글 쓰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도구가 돼야한다고 말할 때는, 문학과 인생에 대한 경외심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게는 모국어에 가까운 영어와 영문학에 대한 사랑(그는 영어는 문학을 위한 언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아한 미학과 도덕성이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놀랄 정도로 영어를 사랑하고 도덕성을 중시하는 이곳 지성인들의 어쩌면 자연스런 반응이다.

이성이라는 이름 아래 갇혀있던 환상성, 초자연성을 문학에 되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보르헤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같은 제3세계 국가문학이라는 이유도 한 몫을 하여, 우리나라 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운문의 기술’과 ‘칠일 밤’의 매력은, 그러한 작품에서는 찾기 힘든 친근함과 관대함이 잘 드러났다는 점이다.

높은 지성을 갖고 있으나 부드러운 어투와 따뜻한 미소를 지닌 아저씨와 같은 보르헤스의 목소리가 활자화한 것을 읽는 것은 낮고 깊은 즐거움을 준다.

/박상미 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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