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과 독일이 결승에 진출한 건 천만다행이었다. 양팀 모두 과거에 월드컵 결승 무대를 6번이나 밟은 만큼 누가 우승해도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나는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와 전통의 강호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이 줄줄이 탈락할 때마다 유럽 축구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실제 유럽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절대 강자의 위상이 크게 훼손됐다. 그러나 빡빡한 유럽리그 일정만 아니었다면 피구, 지단, 라울, 토티 등 월드스타의 플레이는 좀더 화려했을 게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독일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건 정말 칭찬할 만하다. 대회 초반 나는 독일팀에는 올리버 칸을 빼고는 내세울만한 월드스타가 없는데다 선수들의 플레이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고 혹평한 바 있다.
미국과의 8강전을 보면서도 조직력과 기동력을 갖춘 미국의 플레이에 더 매료됐다. 그러나 브라질과 맞붙은 결승서 스트라이커 클로세는 물론 하만과 슈나이더 등이 제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독일 사람인 탓도 있지만 나는 독일이 브라질보다 더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브라질은 개인기량면에서 본선 진출 32개국중 가장 뛰어났다. 스콜라리 감독은 시스템을 강조했지만 브라질 경기는 대부분 화려한 테크닉이 승부를 갈랐다.
특히 결승에서 두골을 뽑아낸 호나우두는 그다지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 놀라운 골결정력을 과시했다. 카를루스, 히바우두, 호나우디뉴, 에드미우손 등도 월드스타로서 손색이 없었다.
터키와 한국은 이번 월드컵에서 내게 큰 기쁨과 만족을 선사했다. 양팀은 3위를 놓고 다툴 만한 자격이 충분했다.
특히 강한 승부욕을 앞세운 터키는 가장 재미있는 축구를 선보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집중력만 좀 더 좋았다면 우승도 바라볼 만큼 기량과 스피드 모두 훌륭했다.
명장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끈 한국도 홈 어드밴티지와 무관하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쉬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빈 안정환의 자기희생은 특히 돋보였다.
16강전서 한국에 패한 이탈리아는 심판판정을 문제삼고 있지만 한국은 승리의 감격을 누릴 만 했다. 8강전서 맞붙은 스페인도 템포 조절에 실패한 탓을 하는 게 현명하다.
심판판정에 울었다고 합리화할 수는 있지만 스페인은 무기력한 플레이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 붉은악마로 대변되는 한국팬들의 응원도 훌륭했다. 훌리건이 없는 한국응원은 분명 유럽에게 교훈을 주었다.
나는 한국이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도 4강 신화를 재연하기를 바란다. 또 세네갈이든 나이지리아든 아프리카 팀이 유럽과 남미의 벽을 넘어 4강 이상의 성적을 내기를 기대한다.
아무튼 4년 뒤에도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독일 브라질은 여전히 최강의 전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지만 아프리카와 아시아팀의 돌풍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06독일월드컵조직위원장
※한국일보는 5일자로 베켄바워ㆍ메노티 칼럼 연재를 모두 마칩니다. 그 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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