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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의 붉은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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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의 붉은 악마

입력
2002.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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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월드컵 준결승전이 벌어진 서울 상암경기장. '붉은 악마'가 경기 때마다 깜짝 쇼 형태로 펼쳤던 카드 섹션에 익숙한 국민은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여주려는가'궁금해 했다.그때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진 게 바로 '꿈☆은 이루어진다'였다. 너무나 멋있는 캐치 프레이즈였다.

그날 우리는 독일 팀에 패배함으로써 결승 진출에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쉽지 않았다.

우리의 꿈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월드컵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이겨 봤으면'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었는데, 16강을 넘어 8강, 그리고 4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이었다.

월드컵은 끝났다. 너무 신나는 한판 축제였다. 온 국민이 열광하고 환호하고 참여하였다.

한 때 전국에서 700만 명이 모인 거리응원에 전세계는 물론 우리 자신도 놀랐다. 우리가 가진 그 놀라운 힘과 신명과 통합력은 응어리진 지난 시대 속에서 숨겨지고 억눌려 있었던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너무 잘했기 때문에 오히려 허탈하고 공허하다. "이젠 무슨 재미로 살까" 라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들린다.

다시 돌아온 현실은 암담하고 실망스럽기만 하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그 어느 한 분야에도 우리가 그렇게 환호했던 축구처럼 멋있는 구석은 찾아 볼 수 없다.

존경하고 싶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거스 히딩크 감독도, 최선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비는 멋있는 선수들도 거기에는 없다.

오히려 썩고 병든 오물 냄새만 가득하다. 대통령 아들들이 권력의 후광을 업고 온갖 이권에 개입하여 거액을 챙겼다가 구속됐다.

6ㆍ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자치단체장들이 취임도 하기 전에 부정과 탈법으로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검찰 간부들이 온갖 비리의혹에 휘말려 사표를 제출하고 사법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연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이나 그들의 정치 행태도 국민에게 커다란 희망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실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1~2년 전의 우리 축구의 현실을. 세계 수준은커녕 아시아에서도 일본 등에 의해 왕좌를 도전 받고 있었다.

그런 수준의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까지 오르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행운과 우연은 한 두번이지 여러 번 오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한국축구의 수준이 향상된 것임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과 선수들이 흘린 땀의 무게에 비례하는 것이리라.

더구나 우리 국민이 보여준 그 엄청난 응원과 열정, 참여야말로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 공짜는 결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어둡고 부패한 정치 현실을 바꾸는 일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진정 깨끗한 정치, 강력한 경제, 정의로운 사회, 높고 깊은 문화를 이룩하기를 원한다면 그만큼 노력과 열정을 바치고 참여해야 한다.

선거에 자신의 투표권 하나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면서 깨끗한 정치를 바랄 수는 없다. 자격이 없는 정치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가 얼굴을 돌린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술자리에서, 동창회에서, 집안모임에서, 택시 안에서 정치를 탓하고 정치인을 욕한다고 그것이 개선되지 않는다.

우리가 붉은 티셔츠를 찾아 입고, 길거리에 튀어 나와 뜨거운 응원을 벌였던 것처럼 바람직한 정치인들을 찾아 후원하고, 정치개혁을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의 회원이 되어 함께 일하고, 그들의 행사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이 비관적인 정치를 희망의 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온 국민이 '12번째 태극전사'가 되었듯이, 단순한 구경꾼을 넘어 선수들과 함께 뛰었듯이, 우리 국민도 이제 우리 사회에서 방관자가 아닌 진정한 주인 노릇을 할 때가 되었다.

그렇다. 꿈은 이루어진다. 그러나 분명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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