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빗장이 열리려던 북미 대화가 미국의 대북 특사 파견 철회로 당분간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 같다.리처드 바우처 국무부 대변인의 2일 발표를 종합해 보면 북한측이 미국의 대북 특사 제의에 답변을 제때 해오지 않은 것이 직접적인 이유이고, 갑작스런 서해 교전이 또 다른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서해 교전이 미국내 대북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한 것이 특사 파견 철회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이로써 일단 북미 관계는 다시 모든 면에서 대립각을 세웠던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초기로까지 회귀해버렸다.
출범 이래 대북 불신감이 팽배해 있던 미 공화당 정권은 당초 대북 대화에 소극적이었다가 한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특사 파견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국무부를 축으로 한 온건파와 백악관과 국방부가 중심이 된 강경파가 줄곧 대립해 왔다.
서해 교전이 터졌을 때만 해도 “특사 파견을 예정대로 추진해 달라”는 한국측의 입장을 전해 들은 국무부측은 “이번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는 식의 온건한 논평을 냈다.
그러나 1일 오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백악관에서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사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만난 이후 방향이 선회하기 시작했다.
이어 하루 만인 2일 바우처 대변인은 특사 파견 철회를 공식화했다.
워싱턴 외교 관계자는 “북한을 악의축 국가로 규정한 바 있는 백악관 등은 대화를 통해 북미 현안을 풀어나가자는 데 기본적으로 회의적이다”고 전제하고 “강경파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특사 파견을 추진했던 협상파들은 이번 사태로 사실상 발언권을 상실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해 보면 북미 대화의 재개는 단기적으로는 하한기를 넘긴 올 가을이나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대선이 끝나는 연말까지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바우처 대변인이 미국은 북미 대화의 용의가 있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북한이 서해 교전과 관련, 미국을 비난하고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 정권을 기본적으로 불신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북미 대화의 돌파구가 열리는 데는 예상 외로 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