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에서 이변이 일어나더니 우리는 월드컵에서 4강이란 세계적 대이변을 일으켰다.그래서 한국은 안에서 뒤집어지고 밖에서 우뚝 섰다. 예기치 못했던 이변은 치열한 경쟁 끝에 일어나는 것이고 이변의 승자는 남모르는 노력을 한 대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월드컵에서의 이변은 아름답기만 한데 지방선거에서의 이변은 씁쓸하다.
여러해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중국에서 '우리 기업은 2류, 정치는 4류'라는 발언을 해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아마 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아무도 시비를 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월드컵이란 국가 대사를 치르고 외국의 국가 원수들이 대거 방한을 하는데 국회는 원 구성도 못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분야로 정치 교육 언론의 3개 분야를 꼽는다. 이 세 분야의 공통점은 국제경쟁을 안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분야이다.
우리 국회의원이 미국의 상원의원과 경쟁을 하지 않아도 표를 얻는데 별문제가 없고, 우리 초등학교 선생님이 일본의 교사와 경쟁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고, 우리 신문이 외국 신문과 경쟁을 하지 않아도 신문 파는데 큰 지장이 없다.
국제 경쟁을 통해 생존의 위협을 안 느끼니 발전이 없고 뒤쳐질 수밖에 없다. 국제 경쟁은 가시밭길이지만 우리를 업그레이드시키는 길이고 한국 축구팀 같이 우리를 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다.
앞으로 이어질 '경제 월드컵'에서 대표선수는 우리 기업이고 기업인들이다. 원가를 1센트라도 줄여야 하고 품질과 기술 수준이 조금이라도 경쟁자보다 나아야 기업은 굴러가고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줄 수 있다.
이제 월드컵이 끝나면 챙겨야 할 것은 실물경제, 특히 제조업 분야이다.
경기가 좀 나아지고 수출도 회복되고 투자도 조금 살아나는 조짐이 있다. 그러나 착시현상에 빠지면 안 된다.
경기가 나아지고 투자가 살아나는 것은 건설과 서비스 분야가 중심이다. 수출은 아직도 재작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또 중소기업들은 해외로 나가려고만 한다.
우리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서 이기려면 무엇보다도 선수를 키워야 한다. 심각한 기술인력난 문제와 이공계 기피현상 등이 여론의 바람을 타고 있지만 아직 국가차원의 대응은 미지근하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4+1 석사제' 등 발상의 전환을 한 여러가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관련 부처의 반대에 부딪혀 성사가 불투명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처럼 목적이 타당하고 분명하면 밀고 나가야 한다. 이는 5년 후, 혹은 10년 후 우리 산업을 세계 최강으로 만들어 나갈 대표 선수를 키우는 길이다.
선수들의 사기를 꺾지 않는 일 역시 매우 중요하다. 벌써 경기과열을 걱정하고 냉각수를 뿌리려는 움직임이 있다.
항상 경기과열의 시작은 건설, 개인소비ㆍ서비스 분야 등 내수 부문이고 이로 인한 경기진정 대책의 피해를 보는 곳은 국제경쟁을 해야 하는 제조업 분야이다.
임금 환율 금리 등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제반 여건이 불리해지고 있고 미국의 경제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또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인력부족 문제를 최대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그러나 금융계는 노사정 위원회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주 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순발력을 발휘하였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외국인 연수생 확보도 쉽지 않은데, 절대 부족한 노동시간은 도대체 어디에서 확보하란 말인가? 이런 것들이 결전에 나갈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퇴출되어야 할 부실 기업들이 경기가 다소 호전된다고 다시 시장을 주도하는 현상은 그들을 맥빠지게 한다.
히딩크는 과거에 아무리 명성을 떨치던 선수들도 체력이 약하고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대표단에서 퇴출시켰다. 이제 축구 월드컵의 막이 내렸다.
다시 시작되는 경제 월드컵에서 우리가 또 한번 이변을 일으키려면 미리 앞을 내다보고 선수를 키우고 사기를 북돋우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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