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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2)경제의 공은 둥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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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후] (2)경제의 공은 둥글지 않다.

입력
2002.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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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실한 씨앗은 뿌려졌다. 하지만 그 씨앗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축구공은 둥글지만, 경제의 공은 둥글지 않다. 축구장에선 약팀이 강팀을 꺾을 수 있어도 시장은 이런 이변을 허용치 않는다.

경제는 비기기 전략도 통하지 않고, 골든 골이나 승부차기 같은 극적 반전도 기대할 수 없는 ‘강자의 시장’일 뿐이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가 우리의 경제적 번영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FIFA컵만을 위해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는 나라는 없다. 축구의 승부도 중요하지만 대회 개최를 통해 얻어지는 유ㆍ무형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국가적으로 더욱 의미를 갖는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월드컵 개최는 투자인 셈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캐치프레이즈는 ‘유럽의 중심에서 만납시다(Wir sehen uns im Herzen Europas!).’ 월드컵을 통해 명실상부한 단일 유럽시장의 중심임을 확인하겠다는 뜻이다.

1998년 개최국이었던 프랑스는 ‘새로운 프랑스’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문화 중심국을 넘어, 산업과 기술로 무장된 새로운 프랑스 이미지를 창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82년 스페인은 독재국가의 오명을 벗고 산업ㆍ관광국가로 변신하겠다는 뜻으로 ‘스페인이 달라진다’란 개최구호를 내걸었다. 2002년의 구호 ‘다이내믹 코리아’ 역시 활력넘치고 하이테크가 꿈틀거리는 정보기술(IT)강국,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손익계산서 현대경제연구원은 월드컵 4강의 직접적인 소비진작 효과를 3조7,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기념상품 응원용품 등 소비규모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월드컵 체감경기는 기대수준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티셔츠 판매상과 붉은 색 염료업체, 그리고 히딩크 인형 제조회사 정도나 ‘대박’을 누렸을까.

국민들의 소비시간을 TV와 길거리 응원이 빼앗아간 탓에 음식점 술집 택시 등 최종 소비부문의 매출은 영 시원치 않았다. 백화점 홈쇼핑 인터넷쇼핑몰 등 유통업계도 월드컵 이전에 비하면 오히려 판매가 크게 둔화했다.

관광수입도 예상외로 저조해 일부 특급호텔은 숙박단가 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줄었다. 면세점 역시 10~15%의 매출감소가 나타났다. 당장의 ‘캐시 플로’만 본다면 월드컵 대회 자체는 결코 황금알을 낳는 거위는 아니었던 셈이다.

가치ㆍ심리 부양효과 하지만 월드컵의 경제적 득실을 6월 한달의 대차대조표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진짜 열매는 장부화할 수 없는 간접효과와 5년, 10년후의 장기효과로 나타난다. 한국경제의 가치진작, 국민들의 심리진작 효과 측면에서 이번 월드컵 성과를 판단해야한다는 얘기다.

우선 420억 인구가 월드컵을 시청, 한국의 국제적 인지도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현대경제연구원 박태일 연구위원은 “중계방송을 통한 우리나라의 국가브랜드 홍보효과는 광고비로 환산할 때 60억달러(7조7,000억)에 달하고 기업브랜드 인지도 상승도 1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로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경제 저평가)’ 의 오명을 씻고 ‘밸류 코리아(한국경제의 가치상승)’를 정착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경제주체들의 자신감 상승도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경제는 심리다. 축구를 통해 얻은 자신감과 근성은 산업현장에서 ‘할 수 있다’는 분위기를 확산시켜 경제전반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씨앗은 씨앗일 뿐이다. 우리는 이미 88 올림픽의 열기를 무산시킨 뼈아픈 경험을 갖고있다. 멕시코는 86년 월드컵 개최에도 불구하고, 주기적 환란국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코리아 브랜드가 높아졌더라도 기업이 1등 제품을 만들어 팔지 못하면, 아무리 국민들이 사기와 자긍심이 충천했더라도 실질 경제활동의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축구를 잘한다고 경제도 발전한다는 막연한 기대심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관건은 월드컵 자체가 아니라 수출경쟁력 제고와 내수시장 효율화에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한국축구는 1년 반의 ‘특별과외’를 통해 4강 신화를 일궈냈다. 하지만 경제엔 ‘벼락치기’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히딩크 리더십, 개방·경쟁정책에 활용"

정부는 장외 월드컵 이벤트로 외국 투자유치를 겨냥한 글로벌기업 CEO 초청행사에 가장 신경을 썼다. 그러나 보다 큰 수확은 한국 축구 대표팀의 ‘4강 신화’와 이른바 ‘히딩크 리더십’에 따른 개방과 경쟁 원칙이 자리잡은 것이다.

대표적인 경제 이벤트로는 ‘다국적기업 CEO 초청 라운드 테이블’(5월30일)과 ‘서울투자포럼’(5월29일), 각종 국내외 한국상품홍보전시회 등이 꼽힌다.

모두 54명이 참가한 ‘라운드테이블’ 의 경우 월드컵 개막식 입장권 구입비용 9~10억원, 숙박비 및 항공권 구입료, 통역요원 활동비 등을 합친 10억원 등 6박7일간 모두 20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그 결과 타이거데브(캐나다, SOC개발업체)가 강원도에 2억달러의 투자계획을 확정했고, 오드펠(노르웨이, 특수화학제품운송업체), 다우코닝(미국, 화학), 도레이(일본, 화학) BAE(영국, 항공우주업체), 악조노벨(네덜란드, 화학ㆍ제약) 등 5개사가 신규 및 증액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산자부 관계자는 “당장의 투자유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에 대한 인식변화의 계기로 작용함으로써 중장기적 투자유치의 전기가 됐다는 점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대회기간에 열린 총 11개 전시회에는 3,231개 업체가 참가, 해외 유력바이어 1만5,000여명을 포함한 24만명이 참관했고 수출상담 24억달러, 수출계약 2억2,000만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포스트 월드컵 대책’에서 ‘히딩크 리더십’의 요체를 ▦명확한 비전 제시와 소신있는 추진 ▦개방을 통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도입 ▦연고주의 탈피, 경쟁원칙의 고수 ▦기초체력을 바탕으로한 경쟁력 강화 등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 박병원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히딩크의 성공은 그동안 부처간 갈등이나 이익집단의 저항으로 진전을 보지 못한 개방ㆍ경쟁정책의 돌파구를 여는데도 큰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며 “정치 일정과 관계없이 주요 미해결 개방ㆍ경쟁 관련 재추진 정책 리스트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사과 농가의 반발로 주춤거리고 있는 한ㆍ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한ㆍ미투자협정(BIT)에 대한 영화인들의 반발과 해당 부처의 소극적 대응은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접근해야한다”며 “월드컵을 통해 얻은 개방과 경쟁 효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경제, 교육, 사회 전 부문에 걸친 정책 추진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현대자동차의 일본 내 인지도가 월드컵 전 32%에서 67%로 급증했다”며 “하반기 중에는 ‘붉은악마’의 브랜드를 기업과 상품 인지도에 접목시키기 위해 민간기업과 공동으로 대규모 비즈니스사절단의 해외 설명회 등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장인철기자

icjang@hk.co.kr

김상철기자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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