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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지'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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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토지'의 여성들

입력
2002.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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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소설 ‘토지’의 1부는 로맨스가 압권이다. 머슴 구천이와 별당 아씨의 비련, 용이와 원망스러운 운명을 타고난 무당 딸 월선이 빚는 불가해한 사랑 등은 독자로부터 거역하기 어려운, 숙명적 사랑이 있다는 독후감을 얻어내고야 만다.2부는 주인공 최서희와 자신의 머슴 격인 길상의 사랑과 결혼, 독립운동이 큰 줄기를 이룬다. ‘토지’가 우리 문학사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것은 소재의 방대함과 주제의 깊이 등이 다른 소설에 비해 탁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 작가의 역사를 꿰뚫는 비판정신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이 소설을 위대하게 만든다. 예를 들면 나이가 들어 의병운동과 독립운동을 이해하게 된 서희의 시대적 각성 부분이다.

그녀는 남편 길상이 어렸을 때 절에서 자라 근본이 불확실한데다, 독립운동으로 신변이 항상 위태로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호적상 아들 환국ㆍ윤국이 자신의 최씨 성을 따르도록,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조치를 해 둔다. 허구적 구성이더라도 관습과 제도를 혁파하려는 양반집 규수 서희의 선각자적 행동이 놀랍다.

■ 지금은 기세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10년 전쯤 여성운동을 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부모의 성을 함께 표기하는 운동이 거셌다.

최근에도 ‘여성과 사회’라는 잡지를 보면 이박혜경 김신현경 김이승현 등 네자 이름의 필자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첫자가 아버지 성(姓), 두번째 자가 어머니 성일 것이다. ‘어머니’라는 여성의 존재가 족보와 역사에 묻히고 소외되는 현실에 대한 외로운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 여성은 족보의 구속을 덜 받기 때문에, 작명할 때 남성보다 돌림자에서도 자유로운 편이긴 했으나, 네자 이름은 놀라운 결단이었다. 여성부가 이번 여성주간(1~7일)을 맞아 호주제 폐지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주제는 남성의 성(姓)으로 이어지는 부계혈통만 인정하는 낡은 유산이다. 얼마 전까지 여성의 재혼은 금기시됐으나 지금은 당연한 권리가 되었다.

이제 다시, 호주제를 없애 이혼한 여성이 자녀에게 자기 성이나 새 남편의 성을 주어 새 삶을 누리도록 해줄 때가 되었다.

박래부 논설위원기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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