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미국의 가장 큰 힘 가운데 하나는 시민의 참여였다. 그러나 지난 40년 간 미국 사회의 짜임새는 계속 흐트러졌다.미국 시민들은 사실상 모든 면에서 서로와의 관계를 약화했다. 미국인들은 이제 투표도 덜하고, 예전만큼 잘 어울리지도 않으며, 기부금도 내지 않는다. 그리고 친구, 이웃 심지어는 가족과의 믿음과 유대도 약해졌다.
지난해 9월 11일, 형용할 수 없는 하나의 비극이 이런 추세를 극적으로 역전시켰다. 미국인들은 이제 친구와 이웃, 그리고 공공기관을 재발견하고 운명을 같이 하려 하고 있다.
2년 전 나는 책 ‘혼자 하는 볼링’에서 미국에서 시민사회를 재건하려면 전쟁이나 경제공황, 자연재해 같은 국가적 위기가 일어나야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행인지 불행인지 위기가 발생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 미국인이 그런 위기를 맞았다.
우리는 현재 9ㆍ11 테러가 미국의 가치와 시민생활에 미친 영향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01년 10~11월, 그리고 올해 3월 우리 연구팀은 ‘혼자 하는 볼링’을 쓰기 위해 조사했던 미국인 3만 명의 행태를 다시 조사했다. 지난 가을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탄저균 공포, 지난 봄의 엔론 사태의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서다.
지난 가을 조사된 미국인에서는 냉소적 경향이 크게 떨어졌고, 정부에 대한 신뢰가 크게 늘어났다. 또 경찰 이웃 직장동료뿐 아니라 상점 직원과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동체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8%가, 공동체의 각종 일에 대한 참여하겠다는 의사는 6%가 높아졌다. 정치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반면 개인적인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은 약해졌으므로 집단으로서의 건강도도 좋아졌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이같은 시민적 태도의 개선은 다른 인종에 대한 인내심도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단 아랍계 미국인들에 대한 태도만큼은 예외다.
그런데 이같은 태도의 변화가 아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로 공동체의 조직에 가입하거나, 회합에 참석하는 사례가 늘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 9ㆍ11 테러 직후 공표됐던 언론 보도나 연구 보고와는 달리, 우리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늘거나 종교심이 향상되지 않았다.
헌혈이나 기부금도 변화가 없었다. 만일 9ㆍ11 직후 보도됐던 종교심이나 총체적 박애심의 증가가 사실이라면 우리의 조사로 1~2개월 만에 다시 퇴조한 것으로 드러난 셈이다.
요약하자면 ‘9월의 비극’은 미국의 시민생활을 재생할 수 있는 역사적 기회의 창을 연 게 사실이다. 미국인들은 수십년 만에 처음 단결했고 희생을 나누거나 감수할 태세가 돼 있다.
정말로 대부분의 미국 성인들은 넓은 의미의 ‘우리’라는 개념을 처음 경험하고 있다. 특히 세계무역센터(WTC)의 참사는 라틴계 접시닦이와 아일랜드계 소방관, 그리고 유대계 금융가의 운명을 하나로 묶어냈다. 좀처럼 보지 못했던 계급과 계급, 인종과 인종의 단결력을 일으킨 것이다.
시민 지도자들은 이같은 시민생활 태도의 변화를 이미지와 상징으로 공고화하고 있다. 미국 공익광고협회가 여러 인종을 등장시킨 ‘나는 미국인’ 광고로 다문화주의를 칭송한 것,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슬람 모스크(사원)을 방문한 것들이 이런 맥락이다. 이런 이미지는 영향이 크다. 1942년 진주만 폭격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일본 신사를 방문했다고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 한 가지도 분명하다. 제도를 바꾸지 않는 이미지만으로 시민생활의 분수령을 가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민적 충동은 국가적 위기 때마다 정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충동은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퇴조한다.
2차 세계대전 때만큼은 예외였다. 당시의 충동은 ‘가장 위대한 세대’라는 구호를 통해 신념으로 영원히 응축됐다. 그 세대는 죽을 때까지 다른 세대보다 많이 투표했고, 기부했으며, 더 믿고 더 참여했다.
당시 제대군인원호법(GI Bill)과 같은 훌륭한 정책과 제도, ‘승리의 정원’(Victory Garden: 개인의 정원을 이용한 식량증산 운동) 등 위대한 공동체운동 등이 개개인의 생각을 하나로 담아냈다.
그렇다면 2001년 가을의 시민적 충동이 올해 봄에 어떻게 됐을까. 3월의 조사 결과에 대한 우리의 분석이 아직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한번 열렸던 ‘역사적 창’은 다시 닫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사회를 재생할 기회가 사라져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의 행동은 변화가 없고 태도는 도리어 악화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들은 미국에 대한 2차 후속테러 공격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를 되풀이하고 있다. 9ㆍ11 테러 당시보다 서로 의존하지 않고 취약한 미국인들의 태도는 이같은 경고에 대한 반응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테러 공격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미국 시민사회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USA자유봉사단’이라는 자원조직에 10억 달러를 투입, 지역 공동체가 테러에 대비토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미국인들에게 일생의 2,000시간을 봉사해주도록 요청했다. 하지만 이같은 요청은 봉사의 기회와 일치하지 않고 있다. 많은 비영리단체들은 여전히 자원봉사자들이 부족하고 비능률적이라는 편견 속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국가에 대한 봉사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생각을 해야 한다. 정치 및 교육계 지도자들은 지금이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다시 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더 새롭고 적극적인 시민교육을 펼쳐야 할 때다.
우리의 조사가 시사하듯, 미국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을 국가공동체의 정식 일원으로 받아들일 태세를 갖추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현재의 국가적 분위기를 인종간 갈등, 계급적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1950년대의 민권운동의 뿌리 중 하나는 전쟁에 모든 인종과 계급을 동원한 2차 대전의 경험이었다. 전쟁 동원은 사회적 정의와 인종간 통합을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이 점점 다문화 사회로 이행하고, 많은 미국인들이 ‘모든 미국인’을 국가공동체 속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이 때만큼 더 좋은 기회는 없다.
마지막으로 국제사회에 미칠 영향을 언급하고 싶다. 9ㆍ11 사태 후 미국인들은 부시 정부를 강하게 지지하고 있다. 잘할 때뿐 아니라 못할 때까지도 정부를 변호하고 밀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면 각종 조사에 따르면 미국식대로 한다는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대한 지지는 놀라울 정도로 퇴색하고 있다. 미국은 테러 참사 이후에 국수주의로 갈 수 있었지만 내 생각으로는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공동체의 유대관계 가치를 새삼 인식하게 됐지만, 동시에 유례없이 좁은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뼈저리게 알게 된 것이다.
로버트 D 퍼트남/ 하버드대 교수ㆍ정치사회학
톰 H 샌더/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시민참여연구소 소장
■퍼트남 교수는
로버트 퍼트남은 미국인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불안감을 학문적으로 규명해냄으로써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정치사회학자다.
그는 1995년 ‘볼링도 혼자, 쇠퇴하는 미국의 사회적 자본’이라는 논문에서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9세기 중반 미국 민주주의의 원동력이라고 높이 평가한 시민사회의 역동성이 40년 동안 붕괴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미국인의 심금을 건드려 큰 논란을 일으켰고, 퍼트남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수시로 자문을 청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퍼트남은 2000년 근작 ‘혼자 하는 볼링: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부활’(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에서도 미국 사회의 내재적 소외 양상을 총체적으로 그려냈다. 이 책은 미국인들이 가족과 이웃, 그리고 여러 층위의 공동체들로부터 유대가 끊김으로써 시민사회 자체가 깨져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시적으로 미국에서 1980년 이후 93년까지 혼자 볼링을 하는 사람은 10%가 증가한 반면 여럿이 함께 하는 볼링 리그는 40%나 감소했다. 그는 일요일 피크닉을 가는 횟수, 학부모회에 참석하는 비율, 도로에서 다른 운전자에게 길 안내를 해주는 정도 등을 무수한 인터뷰를 통해 수치화했다.
퍼트남은 공동체의 붕괴를 이렇게 요약한다. “이제 여성유권자연맹이나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ㆍ불우이웃돕기단체), 슈라이너스(the Shrinersㆍ국제자선단체), 매달 열리는 브릿지 게임 클럽,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가는 일요일 피크닉마저 참여자가 점점 줄어들게 됐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의 적자는 교육 성취도, 치안, 공정한 세금 징수, 민주주의적 민감성, 일상적 정직성은 물론 심지어 건강과 행복까지 위협하게 된다.”
퍼트남은 1963년 스워스모어 칼리지를 졸업, 예일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하버드대에 봉직하고 있다. 그의 주장을 계기로 미국 시민사회 붕괴 문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광일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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