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정부의 공적자금 집행 및 상환대책이 나오자 일부 언론과 정치권은 뭇매를 퍼부었다.이들은 공적자금 손실분이 69조원이라는 발표의 앞뒤를 거두절미하고 “정부가 떼인 69조원을 국민에게 덤터기 쓰운다”거나 “모든 부담을 기업과 금융 등 민간부문에 돌리려는 정부의 처사에 분노한다”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금융기관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투입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이제부터 국민의 허리띠를 졸라매 갚아야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은 없다.
그러나 공적자금은 해당 금융기관의 생존을 넘어 그 기관과 거래해온 수많은 기업의 갑작스런 파산을 방지함으로써 수십만 근로자의 고용을 유지하고, 파산 직전의 경제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안정시키는데 쓰인 돈이라는 고유의 기능을 지적하는 얘기는 좀처럼 듣기 힘든다.
최근 공자금 손실 분담을 논의하기 위해 시중은행장들이 모였을 때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일부 우량 은행장들은 “공자금을 받지않은 우량 은행들에게 공자금 투입은행과 함께 특별예금보험료를 부담케 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후 우량 은행들의 눈부신 성장 역시 상당부분 공자금 투입을 통한 국가경제의 급속한 회복에 기댄 것이라는 점을 애써 간과한, 또다른 도덕적 해이이다.
원금만 69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 손실은 분명히 씁쓸한 대목이고, 이 돈을 공돈처럼 생각해 마구 주거나 끌어쓴 책임도 물어야한다.
그러나 전후를 따지지 않은 감정적 주장은 이제 막 시작된 공자금 청산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방해할 뿐 아니라 사리에도 맞지 않는다.
누굴 욕하고 끌어 내리기 보다는 어떤 집행ㆍ회수ㆍ상환 방안이 국가 경제를 위해 바람직한지, 또는 회수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개발의 필요성은 없는지와 같은 냉정하고 건설적인 논의가 중심이 되려면, 공자금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대승적 이해가 전제돼야 한다.
장인철 경제부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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