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강경대. 한총련. 최루탄은 1990년대 초반 지독하게 자욱했다. 그때 대학을 다녔던 젊은이들에게는 맵고 독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연기는 곧 걷혀 버렸다.오래 의지할 만한 기억으로 삼기엔 너무 짧았다. 세상이 바뀌었고 학생들은 여름방학 때 농활 대신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누구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이야기를 세상에 흘려 보낸다. 71년생 90학번 작가 김종광(31)씨는 71년생 90학번 여학우 양다인 얘기를 썼다.
중편소설 ‘71년생 다인이’(작가정신 발행)다. ‘시험 성적은 늘 최고권이었던 중학생. 독서회 가입 및 전교조 가입 교사 지지 시위를 이끈 고등학생. 입학하자마자 등록금 동결 시위를 주도하고 분신까지 시도한 운동권 대학생. 출옥한 뒤 벤처 회사를 차렸다가 돈을 다 날리고 이념의 전선이 아니라 생업의 전선에서 고투하는 여자.’
그것은 어쩌면 다인이와 동갑인 작가의 얼굴일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몸을 누이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정색을 하고 학점과 토익 점수를 관리하지도 못했던.
작가의 말대로 이들은 분명히 386세대도 아니었다. 신세대도, X세대도, 인터넷세대도 아니었다.
“80년대 선배 학번들로부터는 학생 운동을 흉내내는 후배 정도로,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세월이 좋아졌는데 괜히 데모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로” 여겨지는 젊은이들.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김종광씨의 소설은 결국 이렇게 묻는 것이다. 다인이의 이야기라지만, 다인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다인이의 남동생과 의붓어머니, 고등학교 친구, 의붓아버지, 대학교 친구, 전경 친구 등 주변인물 6명의 시선을 통해 다인이를 묘사한다.
다인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사람들이 선 자리는 저마다 다르다.
젊은 날 의식화 교사로 몰렸지만 나이 들어 과학 전문 사교육 업체를 차려 큰 돈을 번 의붓어머니, 비행 학생이었지만 다인이에게 경도돼 전교조 지지 데모에 합류한 고등학교 친구, 자식의 데모가 앞날의 걸림돌이 될까 전전긍긍하다가 시간이 지나 명예퇴직을 강요당한 뒤 지나온 인생을 회의하는 의붓아버지….
71년생 다인이의 삶을 좇던 그들에게 어느 순간 자신이 선 자리가 비춰진다.
그들이 지켜보는 다인이는 어디에 서 있을까. 법정에서 고개 한 번 숙이지 않았던 다인이는 회사를 차렸다가 쫄딱 망하고 나선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한총련 출범식을 다녀온 01학번 동생에게 “나는 신념이고 뭐고 다 잃어버렸어. 나는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어. 그냥 열심히 먹고 살아갈 뿐이야”라고 말하는 다인이.
아니,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지금쯤 서른을 넘나드는 사람들. 어쩌면 내용이 거칠고 구성이 헐겁다는 비판도 있을 법하다.
그것은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방식이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유쾌하고 분방한 데서 나올 수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 유쾌함은 아픔을 감추려고 일부러 크게 웃는 것과 같은 몸짓이 아닌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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