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며 세계 축구계에 무엇을 남겼는가. 영국의 두 권위지는 이번 월드컵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면서, 체력과 투지를 바탕으로 이룬 한국 축구에 대한 촌평을 28일 게재했다.■파이낸셜 타임스
한일 월드컵은 훌륭한 대회다. 하지만 대단한 것까지는 아니다. 이번 경기에는 흥분과 박진감이 있었다.
논쟁도 적지 않았지만 너무도 극적인 순간이 펼쳐졌다. 넘쳐 나는 활기와 조직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았다. 때론 심장을 고동치게도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에 맞서 네덜란드의 공격형 미드필더 데니스 베르캄프가 보여주었던 마치 숨을 앗아갈 만한 골은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월드컵의 잉글랜드-아르헨티나 경기나, 역시 그 대회에서 기념비적인 준결승이었던 네덜란드와 브라질의 대결에 필적할 만한 경기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없었다. 98년 대회에서 지네디 지단이 보여주었던 정도의 실력을 선보인 스타 선수도 부재했다.
과거 월드컵 수준과 대등한 경기는 한국과 이탈리아 전 정도다. 이변도 많았지만 결국 이번 대회의 경기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다. 지단도, 루이스 피구도, 후안 세바스티안 베르몬도, 또 데이비드 베컴도 그들의 실력을 십분 보여주지 못했다.
거기에는 유럽 리그가 끝나자마자 월드컵을 시작하도록 일정을 잡은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책임도 있다.
한국과 스페인의 8강 전에서 스페인의 골든 골이 결격 처리된 것은 이번 월드컵에서 대표적으로 부정적인 면이다. 입장권 판매도 문제가 있었다.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행사로 꼽히는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터키의 준결승 전 같은 중요 경기에 빈 자리가 많았던 건 잘못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 긍정적인 면이 가려질 수는 없다. 한국은 거스 히딩크 감독의 지휘 아래 처음이자 사상 최고로 준결승에까지 진출하는 업적을 이뤘다.
세네갈이 프랑스를 꺾은 것도 이변이었다. 응원의 물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한국의 ‘붉은 물결’은 많은 화제를 낳았다.
■인디펜던트
천재적인 기량의 축구 스타들과 맞붙는다 하더라도 감독 혼자서 전략과 전술을 어떻게 잘 구사하느냐에 따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월드컵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다. 비록 한국과 터키가 결승 진출에 좌절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 같은 경험이 축구의 미래를 위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놓고 생각해 보자. 필자는 후자쪽을 선택하고 싶다.
한국 팀이 던져준 충격이나 세계 축구의 판도 변화에 대한 논의는 제쳐두고 역대 월드컵에서 이렇게 빈약한 결과를 가져온 적이 있는지 한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조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채 아르헨티나와 프랑스 팀은 한가지 질문을 남겨놓은 채 일찌감치 돌아가버렸다.
세계 축구가 상향 평준화한 것인지, 아님 하향 평준화한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일요일 결승전이 이에 대한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한국의 4강 신화로 많은 사람들은 거스 히딩크 감독 같은 명감독의 조련 아래 극한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두려움 없이 열심히 뛰기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
한국 팀은 체력과 스피드를 갖추고 잘 조직된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들의 탁월한 능력은 단기전에서만 쓸모가 있는 것들이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한국 선수들처럼 뛰라고 한다면 아마도 겨울이 오기 전에 모두 탈진해 버릴 것이다.
월드컵 4회 진출의 전설적인 영국 감독이었던 월터 윈터바텀은 20세기에 아프리카 국가가 월드컵에서 우승할 것이라고 점쳤었다.
예언은 빗나갔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이제 아시아가 아프리카를 이을 후보 대륙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칠 줄 모르는 팀워크로 무장한 아시아가 개인 스타들에 대한 숭배 대신 감독을 더욱 빛나는 존재로 부각시킬 수 있을까.
독일전에 패한 뒤 미드필더인 박지성은 “우리는 다음 번에는 4강 진출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 내기를 해보고 싶다. 그의 말이 맞는지 내 말이 맞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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