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을 넘어서는 세계에 대한 외경심이 있다. 원시시대에는 모든 만물에 정령(精靈)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 믿음은 점차 종교라는 형태나 속신(俗信)으로 구체화 되었다.중국이나 우리 민족에게도 신앙의 대상이 많았다. 하늘과 땅, 산, 바다 등 자연에서 부뚜막에 이르기까지 수 없이 많은 신이 있었다.
지금의 잣대로는 허무맹랑한 미신으로 보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주자학이 성립되었던 송대에도 신이(神異)한 일화를 담고 있는 필기소설들이 남아 있다. 그 중 이견지(夷堅志)에 보면 귀신이나 꿈에 관련된 이야기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재미있는 것으로 부인이 죽으면서 상대방에게 재혼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이를 어겨서 횡액을 당했다거나, 죽은 부인이 꿈에 나와서 재혼한 부인이 자기의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고 있으니 용서해 준다고 했다는 등 일화가 있다.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 식의 이야기들로 대부분 권선징악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산업사회와 과학문명으로 대표되는 21세기에도 우리 주변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또 믿는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명확한 근거가 없는 금기(禁忌)를 믿고 준수하는 경우도 흔하다.
예컨대 ‘밤에 손톱을 깎으면 복이 달아난다’ ‘밤에 휘파람을 불면 재수없다’는 것이나 상인에게 통용되는 ‘아침에 안경 낀 사람을 보면 재수 없다’, 또 어촌에서는 ‘생선을 뒤집어 먹으면 배가 뒤집힌다’ 등이 있다.
이것들은 요즈음 별로 지켜지지 않는 듯 하지만 ‘이사를 할 때는 손 없는 날’을 따지는 사람은 아직도 많다. 이러한 금기 사항들은 때로 사람을 불편하고 부자유하게 만든다.
하지만 보는 관점이나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춘향전에서 춘향이가 옥중에서 꾼 꿈은 거울이 깨지는 흉몽이었으나 해몽하기에 따라서 길몽으로 전환되어, 어사출두한 이몽룡을 만나게 된다는 설정에는 우리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우리 선인들의 지혜는 ‘액땜’이라는 좋은 심리적 장치도 만들었다. 이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보다 더 큰 재앙을 미리 막았다고 생각함으로써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징크스(jinx)’는 원래 불길한 일이나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징크스를 깼다’고 하면 으레 질 것으로 예상했던 승부에 이기거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체념하던 일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극복한 것을 가리킨다.
이번 월드컵 대회 기간 중에는 유난히 징크스라는 말이 많이 터져 나왔다. ‘DJ 불패설’이라든지, 히딩크 감독의 옷이나 우리 대표팀의 유니폼, 여러 경기장에 관련된 것, 특정 국가 대 국가와의 승부, 선수 개개인에 관련된 것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모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 월드컵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면 6월 중에 징크스라는 단어가 200회 가까이 사용되었다.
통쾌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번 월드컵에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이겨서 유럽 팀에 대한 징크스를 벗어 던졌다.
우리가 꿈으로 생각했던 월드컵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자신감의 결과였다. 그러고 보면 징크스는 ‘강한 자 앞에 미리 무릎을 꿇어버리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금기나 징크스가 비합리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개인생활이나 사회에서 부담으로 작용하고 비생산적이라면 과감하게 털어내야 할 요소이다.
역설적으로 금기나 징크스는 깨어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박지훈 경기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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