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스로가 놀랐다. 그리고 온 세계가 깜짝 놀랐다. 월드컵 기간 중 ‘붉은옷’의 응원 물결은 한국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축구장의 열기를 넘어, 한국 땅 전체와 세계로 퍼져나갔다.도대체 한국 국민의 어디에서 어떻게, 이런 놀라운 신명과 단결된 힘 그리고 질서가 나올 수 있었는가. 붉은 응원으로 분출된 우리 사회의 열망과 에너지를 월드컵 이후에는 어떻게 이어가야 할 것인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젊은이의 자발적 페스티벌에서 온 국민의 축제로
‘붉은 악마’가 지핀 불씨에서 시작해, 한국일보사의 ‘붉은옷 입기 캠페인’ 등으로 불이 붙은 응원 열기는 젊은이들에게서 먼저 시작됐다.
종국에는 하루 700만 인파가 거리 응원전에 참가했다. 한국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오르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기 전에 이런 응원 열기가 먼저 있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우리 국민들이 즐거움을 찾으려고 응원을 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자발적으로 함께 참여해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했고 밑에서부터 이 열기가 올라왔다.
우리는 이제 즐길 줄도 알게 되고, 흥을 일으킬 줄도 알게 된 것이다. 평소 축구에 관심이 없던 여성과 젊은이뿐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 없이 태극기를 온몸에 두르고, 얼굴에 페인팅을 한 국민의 모습은 권위와 격식을 벗어던지고 넘치는 흥과 신명을 확인시켰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는 “언론에서 400만, 500만, 700만 하는 식으로 응원 열기에 대해 ‘자기확인적 예언’을 한 측면도 있다. 또 이런 예언들이 실제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페스티벌의 의미”라고 강조했다.
국가가 이런 걸 조작하려 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게 좋다는 것이다. 먼저 사회가 힘이 있어야 나중에 국가도 자연스럽게 힘을 얻는다. 한국 사회의 자발적 연대성을 이번 응원 열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이다.
▼억눌렸던 대중적 욕구 충족시킨 문화적 광장
어느 사회나 대중적 발산의 욕구가 있게 마련이다. 한국 사회는 그 욕구를 억눌러 왔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중은 쓸 돈은 있어도 제대로 놀 곳이 없었다. 한국 사회만큼 ‘놀 수 없는’ 사회가 없다.
이번 길거리 응원에서 가장 열광적이었던 10대와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자기 표출의 기회가 없던 대표적 부류라는 점을 봐도 그렇다.
특히 90년대 들어와 문화적인 소비 향유 욕구가 엄청나게 증대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소비와 욕구의 주체로 나서게 되었다는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
월드컵은 이런 공동체 놀이 욕구에 광장을 마련해주었다. 거리 응원이라는 형태가 나오면서 자연스레 여성 속에 잠재된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거리 응원 형식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대중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조직된 소비자본주의 상품문화의 틀 안에서 개별화한 채 놀 수밖에 없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본주의화는 심화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광장이 형성됐다. 술집, 노래방으로 분산됐던 욕구 발산의 에너지가 운동장, 한강 둔치, 거리로 모아졌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우리 사회가 술마시는 향락문화를 예술적 문화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동체 문화에 대한 욕구는 있었지만, 그동안 한국엔 광장 문화가 없었다. 광장은 데모하는 사람에게나 필요했고, 그래서 보통 사람에겐 거부감을 주기도 했던 곳이다. 87년 민주화운동 때 대중이 광장으로 나온 것은 공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은 지도노선도 없이, 축구를 계기로 자연발생적으로 사람들을 광장으로 모았다. 이번 거리 응원은 광장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버리는 역할을 했다. 광장을 즐길 수 있는 문화적 태도가 형성된 것이다.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공간적인 해방구 ‘광장’을 찾은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
또한 한국시민사회에서 97년 IMF사태 이후 잠재되어온 대중의 열망이 ‘붉은 응원’으로 폭발했다.
단일한 것에 대한 과잉된 집단주의가 아니냐 하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이를 주도한 세대는 10~20대였다. 그들의 참여는 외국의 훌리건 난동과 비교할 때 한 마디로 질서 정연했다.
세대 계층 지역을 넘어 거리 응원에 참여하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끼리 손을 마주잡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광범하고도 열광적인 스킨십은 분명 우리에게 새로운 문화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이번 응원 열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시너지를 보여줬다”며 “우리 사회 에너지의 원천이 어디서 나왔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은 문제적 국가였다. 하지만 70년대 산업화, 80년대 자발적 민주화를 통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한국적 공동체주의였다.
월드컵을 계기로 그것이 다시 분출한 것이다. 한국적 공동체는 개인과 개인의 단순한 합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왔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기 자신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설정한다. ‘나’ 속에 있는 ‘우리’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전통이 이번에 다시 부각되었다.
▼‘태극기 애국심’을 진정한 민족의 에너지로
저서 ‘한국인의 정체성’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철학자 탁석산씨는 “이번 응원 열기에서 근대 국가주의적인 개념과 함께 우리 민족의 유목민적적 특성을 강하게 드러냈다”고 분석한다. 국가 개념은 유럽에서는 100~200년 전에 활성화된 개념이다.
한국엔 예전엔 국가주의란 것이 없었지만 농업사회에서 벗어나 근대화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 여건이 성숙해졌다. 유럽에서는 이런 시대가 이미 지나갔다. 유럽에서도 국가 단위의 축구 응원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나는 레알마드리드 팀을 응원한다”는 식으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우승을 더 중요시한다.
탁석산씨는 이를 세계화의 문제와 연결시켰다. 사람들은 세계화에 대한 무의식적ㆍ의식적 압력을 느끼고 있다. 거대한 세계화 압력에 영어도 해야 하고 해외여행도 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월드컵 개최는 그런 압력을 잊고자 하는 경향을 노출시켰다.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하면서 “나는 애국심에 불타고 있다, 나는 할만큼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나는 애국자이며, 질서도 잘 지키면서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는 일종의 방어적인 애국심, 위안을 주는 애국심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또 가족중심주의적인 유교가 오랫동안 억압해온 유목민족의 특성이 나타났다. 유목민족은 집단으로 몰려다니며 이동한다. 유목민의 개념은 21세기 세계화시대의 화두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우리 민족의 그 기질에 불을 질렀고, 우리의 잠재적인 기질이 터져 모두 다 거리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강내희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앞으로 ‘누구도 비교할 수 없는 한민족의 힘’을 강조하는 식의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중의 열기가 국수주의적인 스포츠 민족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적 문화 기획이 필요하다. 강 위원장은 “이제는 대중이 상시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 순)
▦강내희
▦김용석
▦김호기
▦심광현
▦탁석산
김영화기자
yaaho@hk.co.kr
이종도기자
ecri@hk.co.kr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한 붉은 응원
▽조두영(趙斗英)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대~한민국’을 연호하고 상대팀 기를 죽이는 경기장 안팎 응원단과 국민의 열광은 그 심리근원을 생후 7~8개월 아기가 보이는 ‘낯가림’에서 찾을 수 있다.
낯선 사람을 두려워해서 울어대는 현상은 실은 낯익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더욱 찾는다는 것인데, 이것이 발전해 뒤에 가족과 동질집단을 찾게 된다.
모국(母國)의 영광을 찾아 열광함은 마음 속 어머니를 찾아 서로가 한 뿌리임을 확인하는 기쁨이다. 의례를 제외하고는 어색해서 차마 큰소리치지 못하던
‘대한민국’ 국호를 엄마 찾듯이 웃으며 당당하게 외치게 됐다. 히딩크 감독에 대한 우상화와 열광은 그가 보여 준 강하고 엄하고 공평무사한 스승의 자세에서 국민이 그리던 ‘아버지 상(像)’을 발견했기에 그러하다. 우리 정치지도자 상당수는 부패하고 교활하고 싸움만 하는지라 국민이 신물이 나 있던 참이다.
적당한 선으로 절제있게 심리적 퇴행을 해 인간 본연의 공격욕을 집단적으로 발산하는 재미를 만끽하는 오늘이 자랑스럽다.
▽김이영(金二泳) 성균관대의대 정신과 교수
문화는 축제에서 나온다. 축제는 정신에너지의 발원지이자 지향점이다. 그래서 민족마다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구성원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축제가 진정한 축제다. 혼란 속에 질서가 있고, 커다란 에너지가 분출하고, 지나간 다음에는 뒤탈이 없어야 건강한 축제다.
정신분석적으로는 본질적으로 서로 대립하는 본능과 자아와 초자아가 일체가 되고, 서로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때에 축제는 성공한다.
본능만이 우세한 축제는 난동이고, 초자아만이 득세하는 축제라면 무미건조한 놀이가 된다. 그래서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축제는 짧을 수밖에 없다.
이번 월드컵 응원 축제는 오랜 만에 축제다운 축제를 보여주었다. 깊숙이 숨어 있던 원초적 에너지(본능)의 분출은 정말 대단했다. 질서(초자아)도 완벽할 정도다. 흥분에서 일상으로의 회귀도 잘 통제(자아)되고 있다. 삼자가 완벽하게 조화된 진정한 축제인 것이다.
▽권준수(權俊壽) 서울대의대 정신과 교수
우리나라의 근대사에는 국민들에게 꿈이나 희망을 준 우두머리가 없었다. 우리가 영웅으로 여겼던 사람들도 결국엔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웅을 기다려 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가 갈망하던 영웅이 나타났다.
그 영웅은 바로 지금 우리나라를 온통 뜨거운 용광로처럼 달구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요, 불굴의 태극 전사들이요 그리고 자랑스런 붉은 악마들이다.
이들은 여러 가지 국가적 시련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우리들에게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희열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또 불가능해 보였던 우리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 주었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우리기 하나임을 뼈 속 깊이 느끼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영웅들에게 어떻게 우리가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더 이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 씁쓸해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한국민 우리 모두가 바로 영웅이기 때문이다.
▽이호영 아주대의대 명예교수
우리가 오늘 겪는 이 열광은 단순한 축제성 흥분이나 전쟁 때 적을 이기기 위한 단합된 긴장이 아니다.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엄청난 자기 변화를 겪으면서 스스로 놀라고 있다.서로 싸우느라 비열하고 잔인하고 옹졸했던 우리 모습….이 부끄러움과 열등감을 감추느라 겉으로는 태연하고 자신감있게 보이려고 얼마나 애쓰고 살았는지 모른다.
한국의 얼이 창의적인 열기로 분출되는 월드컵 개막식 장면에서 한민족은 진정한 민족의 긍지를 찾았다.또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 제대로 된 훈련만 쌓으면 우리의 체력이 세계 어느 나라 민족 못지않게 튼튼해질 수 있고 우리의 축구실력도 전통을 자랑하는 어느 나라 못지않게 세련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속 싶이 파묻어 두었던 부끄러움에서 드디어 해방됐다.그리고 우리 자신을 다시 발견했다.오랜 한과 부끄러움으로부터의 해방과 진정한 우리의 긍지를 만끽하는 이 순간에 어찌 흥분하지 않을수 있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