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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장르이야기] 카피우드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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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장르이야기] 카피우드 열풍

입력
2002.06.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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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쉬리’ 흥행 성공에는 우리도 ‘거대한 것, 미국적인 것’ 즉 사이즈를 창출해 낼 수 있다는 자부심, IMF 이후 미국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한 감이 없지 않았다.사실 ‘쉬리’는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카피우드(Copy_wood)’의 시발점을 이룬 영화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흉내내기를 일컫는 카피우드는 할리우드 시스템을 모델로 영화를 생산하려는 벤치마킹인 동시에 할리우드를 겨냥한 반미 감정이 결합된 현상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방식인 이 전략은 전지구적으로 번져 프랑스 ‘아스테릭스’, 러시아 ‘시베리아의 이발사’, 일본 ‘춤추는 대 수사선’등이 카피우드 전략으로 그 해 자국의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막대한 제작비가 드는 카피우드 영화는 결국 내수시장이 아닌 해외시장의 활로와 전세계 배급권이 향후 제작사의 명운을 좌우하게 된다.

결국 미국에 맞서자는 카피우드는 오히려 미국의 규격화한 장르적 구조와 내러티브를 전 세계에 전파하는 전도사가 될 수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카피우드 현상이 SF 장르에서 활발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한 때 ‘찍히면 죽는다’ ‘해변으로 가다’ 같은 호러 영화의 카피우드 현상이 있었지만 한국형 호러인 ‘여고괴담’ 시리즈에 밀렸다.)

SF는 거대한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다는 야심을 채우기에 가장 손쉬운 장르이다.

그러나 ‘로스트 메모리즈 2009’나 ‘쉬리’, 최근 ‘예스터데이’ 같은 카피우드 영화들은 하나같이 폼잡는 남자 주인공을 내세운다.

즉 비장미 넘치는 남성 영웅주의로 지금 여기 남성 관객들의 공감을 사려는 것이다.

또한 카피우드를 지향하는 감독들은 스스로 할리우드의 문화적 지형도에서 자란, 선배 감독들과는 다른 문화적 종자임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이들은 속도감 넘치는 화면과 매혹적인 시각효과로 관객들을 유혹한다. 그런데도 냉정하게 보자면 아직까지 ‘쉬리’를 제외한 SF물의 카피우드는 관객들의 호응을 한껏 얻지 못했다.

문제는 카피우드 영화들이 시스템과 영상뿐 아니라 스토리마저도 할리우드를 베끼려는 데 있다. ‘로스트 메모리즈 2009’는 가상역사를 배경으로 ‘첩혈쌍웅’과 ‘백 투 더 퓨처’가 동거했고 ‘예스터데이’는 살인용의자와 대면한 수사관이 자신의 정체성이 조작되었음을 깨닫는다는 핵심적인 설정 자체가 ‘블레이드 러너’식이다.

‘쉬리’가 보여주었듯 핵심은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줄거리, 새로운 반전이다.

카피우드가 내수시장이라도 잡으려면 결국 줄거리와 인물설정만큼은 카피우드를 떠나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카피우드의 감독들이 대한민국의 팀 버튼이 될지 '블레이드 러너’ ‘스타워즈’의 서자에 그칠지는 그의 야심이 아니라 앞으로 선보일 그의 창조적 포스(forceㆍ ‘스타워즈’에서의 그 ‘신통력’)에 달려있는 듯 하다. 열심히 베낀 그대, 떠나라.

영화평론가

cha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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