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한 날 싸우고 소 닭 쳐다보듯 하던 정치 지도자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과 독일의 월드컵 축구 준결승전이 열린 서울 상암구장의 귀빈석에서다.김대중 대통령과 전직대통령이 함께 만난 것은 1998년 7월 청와대 회동 후 처음이고,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월드컵 대회의 여섯 차례 한국경기 중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응원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서로를 비켜가려던 이들을 한데 모은 것은 월드컵이 조성한 국민통합 분위기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의 개막식 초대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의 전직대통령 초청모임엔 “독재자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참해 왔다.
이 후보와 노 후보도 4일 부산에서 열린 한국과 폴란드 경기 때 부산역 광장에서 함께 응원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주쳤으나 서로 피했다.
이 후보는 해운대 백사장으로 갔고, 노 후보만 부산역 광장에서 응원했다. 한국 축구가 4강까지 갔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들은 그나마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다.
400만~700만명의 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자발적인 길거리 응원에 나서고,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 감독이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하면서 우리에게 던져진 화두 중 하나는 낙후된 정치의 선진화와 창조적이고 효율적인 리더십의 창출이었다.
“정치지도자만 잘 만나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업 그레이드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는 담론이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 에너지를 국가목표를 향해 결집시킬 수 있는 능력있는 리더십이 아쉽다는 공감대였다.
이는 ‘포스트 월드컵’ 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귀빈석의 지도자들이 국민적 바람과 월드컵이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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