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사라졌다. 새벽에 혼자 경운기를 타고 집을 나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남자 황만근이 사라진 뒤 말이 수북하게 쌓였다.“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자석 하나 따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만그이 자석이 있었으마 내가 돈을 백만원 준다 캐도 이런 일을 안할 낀데.” “만그이한테 물어보자.” “만그이도 알 끼다.” “만그이가 있었으모 저 거름이 우리 밭으로 올 낀데. 만그이가 도대체 어데 갔노.”
황만근은 아마 좀 모자라지만 순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바보 자석’이 자리를 비운 새 동네 사람들의 입에서는 말이 술술 풀려나왔다.
죽어버린 황만근은 끝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혀 짧은 황만근이 평생 할 수 있는 얘기보다도 더 많은 말이 쏟아진 셈이다.
그러고 보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소설 제목은 그럴 듯하다.
이 작가의 이름이 곧 ‘(한국 문학에서) 부활한 이야기’를 가리킨다는 소설가, 성석제(42)씨의 소설도 그러하다.
자리에 없는 사람을 두고 뒷얘기 하기. 동네 목욕탕에서 문신 새긴 깡패를 만났을 때 새가슴이 됐던 것은 멀찌감치 돌려놓고 “내가 어제 깡패를 만났는데 어깨에 ‘착하게 살자’는 문신을 새겼더라”면서 키득거리기.
성씨가 중ㆍ단편 7편을 엮어 펴낸 다섯번째 창작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창작과비평사 발행)에서는 이렇게 신나는 말잔치판이 벌어진다.
하기야 없는 사람 이러쿵저러쿵 찧는 것처럼 재미난 일이 또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한바탕 웃고 떠든 뒤에는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이 몰려온다. 성석제 소설의 두 가지 놀라운 힘이기도 하다.
여름날 ‘쾌활(快活) 냇가’에서 남자들의 계 모임이 열렸다. ‘상호친목계’라는 모임의 이름은 황당하게도 ‘한번 계원이 되면 상호간에 평생 친구가 되어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키는 계’라는 말을 줄인 것이란다.
지방선거 출마자로 누구를 내보낼 것인지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는 계원들의 수다는 유치하고 지리멸렬하다.
기가 차서 한숨이 나올 양인데도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재미있다. 냇가에서 개장국을 끓여 먹으며 친목 도모에 힘쓰던 계원들이 양복 입은 조직폭력배들과 맞닥뜨렸다.
걸쭉한 육두문자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소풍 나온 남자들과 양복 입은 남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어이없이 싸움이 끝난 뒤 텅 빈 냇가에서 매미가 쌔름쌔름 우는 장면으로 작품을 끝맺으면서 작가는 천연덕스럽게도 이 날을 ‘명랑한 곗날’이라고 이름붙인다.
작가는 말한다. “이 책을 당신, 천지의 붉은 물고기처럼 유유한 존재께 바치노니, 나는 당신들과 다르고도 상관없어 보이는 모든 것, 나무와 돌, 하늘, 바람, 아카시아꽃에서 언제나 당신들을 느낀답니다.”
얼마나 우아하게 능청을 떠는지. 착하게 살자고 엄숙하게 말하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동네 깡패처럼 말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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