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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 '철강인서 書刻人으로' 지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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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년 이후] '철강인서 書刻人으로' 지정씨

입력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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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61)씨는 1973년 포스코에 입사해 건설과 조업, 철강생산 분야에 두루 종사한 철강인이다. 1995년 53세의 나이로 명예 퇴직한 뒤에는 청소년기부터 꿈꾸었던 예술가의 길에 도전, 늦깎이 서각(書刻)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다.서각은 글씨나 그림을 나무에 새기는 공예로 지씨는 “작품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은 물론 노후에 마음의 평정과 활력을 얻는 데 서각만큼 좋은 취미는 없다”고 단언한다.≫

경북 포항시 죽도동, 가게 앞에 서 있는 장승의 모습이 인상적인 ‘화랑 서화촌’ 안에는 몇 몇 퇴직자들이 서각을 배우느라 초여름 더위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20여년 넘게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후 서각 작품과 목공예품들을 제작ㆍ전시하며 화랑을 운영하고 있는 내게 이제는 뜻 있는 동반자들까지 생긴 셈이다.

정년 후 내가 서각을 하게 된 것은 포스코에서 퇴사하기 몇 해 전 생활 주임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생활주임의 역할은 신입사원의 생활지도와 더불어 자기개발을 위한 여러 가지 취미활동을 선정 지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생산과 품질의 향상을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역할의 일환으로 나는 생활 주임들의 지도력 향상을 위한 능력개발교육과정을 이수하기 위해 서울에서 1달을 지내게 됐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들른 죽봉 황성연 선생의 서예 전시회에서 퇴직 후의 행로를 결정 짓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줄이야!

숱한 서예 작품들의 행렬 속에서 나는 언뜻 보이는 서각 작품 앞에 발을 멈추게 되었고 순간 고풍스러운 나무 빛깔 위에 아로 새겨진 글씨의 멋스러움에 한 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 바로 이거구나’ 낚시, 수석, 분재 등 남달리 취미광이었던 내가 퇴직이후의 평생진로와 함께 노후의 동반자가 될 좋은 취미생활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미술대학에 진학하고도 끝내 학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현역작가로 활동하는 옛 친구들의 소식을 보고 들을때마다 젊은 시절 이루지못한 꿈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나이가 들어서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본 서각의 세계는 내게 노후의 새로운 도전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당장 서예점에서 책 한 권을 산 후 서각 작품 제작 현장을 볼 수 있다는 인사동에 들러 눈으로 보고 익혔다.

서울에서의 교육이 진행된 한달 여 동안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에 들르다시피 했고 서각에 필요한 자료와 도구를 마련해 직장으로 돌아왔다. 마치 큰 수확을 거둔 사람처럼….

나는 회사로 돌아온 후에도 1995년 퇴직할 때까지 시간 나는 틈틈이 실기 공부를 하면서 서각 전시회와 서각인들을 만나 도움을 받았고 관련 자료들을 부지런히 찾아 익히며 스크랩을 해 두었다. 아마도 열매 맺지 못한 꿈에의 상실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퇴직과 함께 ‘화랑 서화촌’ 이라는 간판을 걸고 일을 시작한 지도 이제 햇수로 8년째다. 종교와 관련된 현판, 화각, 교리 말씀과 옛 선인들의 좋은 문구, 가훈 등의 글씨, 문인화, 불화까지 이제 내 손으로 나무 위에 조각되는 것들은 노년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가끔 아내는 “ 돈도 안되는 것들에 뭐 그리 공을 들이우” 라고 농담 띤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나의 노년은 이세상 누구보다 행복하다.

거칠고 힘든 목공예를 하느라 굳은 살 박힌 두 손은 숱하게 생채기가 나고 아침에 입고 나온 옷들은 매일 먼지로 얼룩져 버리지만 투정 한마디 없이 그저 말없이 뒤에서 지켜봐 주는 맘 좋은 아내와 나만의 행복한 일이 있으니 부러울 것이 있으랴.

최근 들어서는 불교인이나 기독교인들이 찾아와 교리 말씀을 새겨 가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가훈을 새겨가기도 한다. 가끔은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서각 작품과 목공예 과정을 지켜보며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과는 서각을 알고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 좀더 우리 것을 알리고 원하는 이에게는 직접 서각을 지도하는 일이다.

얼마 전부터는 옛날 마을 어귀에서 수호신 역할을 한 우리의 장승과 하회탈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있는데 현장을 찾아 배우고 익힌 솜씨로 깎아 세운 장승 한 쌍이 지금 내 가게 앞을 지키고 서있다.

삶에 있어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가치 기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타인의 눈으로 개인의 행복여부를 가늠하는 것 또한 우스운 일일 것이다.

비록 상업성이나 인지도와는 거리가 있고 남들이 관심을 갖기에는 쉽지 않은 분야에서의 독특한 배역과 자부심을 느끼며 요즘 나는 손수 제작한 피땀어린 서각 작품과 화각 작품을 모아 작은 전시회라도 열고자 하는 바람에 오늘도 열심히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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