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탈리아를 꺾고 월드컵 8강에 진출한 다음 날, 이탈리아는 그 패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이탈리아 스포츠지 ‘라 가제타 델로 스포’와 ‘꼬리에 델로 스포’는 ‘추문’ ‘도둑놈들’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꼬리에 델라 세라’는 ‘돈에 팔린 심판들이 뛰는 더러운 월드컵에서 쫓겨났다’ ‘역대 월드컵에서 이런 불공정은 없었다’고 썼다.
하나 같이‘FIFA가 한국의 8강 진출을 위해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진부한 이야기를 들먹였다.
문제는 한-이탈리아 전을 이렇게 본 사람들이 이탈리아 언론과 축구 관계자 밖에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운도 따랐지만 한국은 놀라운 스피드와 주목할 만한 기술을 결합, 수준 있는 축구를 선보였다’고 평가하고 이탈리아팀에 대해서는 ‘뛰어오르기만 하면 상대방 얼굴에 팔꿈치를 들이댔다’며 거친 플레이를 꼬집었다.
리베라시옹도 ‘거친 행동 남발에 심판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썼다. TV의 느린 화면은 심판 판정이 정당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의 반응중에서 압권은 ‘이탈리아를 패하게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안정환 선수와의 재계약을 파기한 페루자 구단주다.
그는 “내셔널리스트인 나는 이를 이탈리아의 자존심에 대한 도전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문을 연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본다”고 말했다.
만일 프랑스의 구단주가 그처럼 행동했다면 프랑스 프로리그에서 뛰는 세네갈 선수는 모두 실업자가 되어야 한다.
구단주들은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눈여겨 보고 있는데 페루자는 ‘너무 잘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기에, 사건은 오히려 안정환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주는 셈이 됐다.
페루자 구단은 이틀 뒤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미 이탈리아에 불명예를 안긴 뒤였다.
프랑스만 보더라도 몇몇 판정은 항의할 만한 근거도 있었지만 오히려 팀의 탈락으로부터 더 큰 교훈을 끌어내지 않았는가.
이탈리아는 화려하진 않지만 골 결정력이 뒷받침하는 효율적인 축구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거머쥔 마지막 해는 1982년으로 르몽드의 지적처럼 ‘이탈리아가 아무리 수수한 상대라도 제압할 수 없게 된 지’ 20년이 지났다.
86년과 98년 프랑스, 90년 아르헨티나, 94년 브라질에 대패하고도 가만히 있던 이탈리아가 이번에는 ‘수수한’한국에 패해 떨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한 것 같다.
/에릭 비데 프랑스인 홍익대 불문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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