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차남 현철(賢哲)씨를 마산 합포구 재선거에 공천해 달라는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한나라당의 대응 태도가 명쾌하지 못하다.18일 밤 상도동 만찬에서 김 전대통령의 단도직입적 공천 요구를 받은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는 19일 같은 민주계 출신 중진인 강삼재(姜三載) 의원을 만나 “밤새 한 숨도 못 잤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공표만 하지 않고 있을 뿐 당 방침은 공천 불가로 굳어진 지 오래지만, 서 대표는 김 전대통령 면전에선 “노(NO)”라고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를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인간적, 정치적 관계를 되짚어 보면 서 대표의 고충은 이해할 만 하다.
1980년대 말 야당인 통일민주당 대변인을 시작으로 문민정부 시절 여당 총무와 정무장관을 지낸 서 대표에게 김 전대통령은 그를 키워준 정치적 스승이나 다름없다.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에 대한 김 전대통령의 독설이 최근 잠잠해진 것도 그가 대표가 됐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서 대표는 아울러 영남권에 일부 남아있을 지 모르는 김 전대통령의 영향력을 의식했을 것이다.
공천을 주지 못하는 당의 처지를 김 전대통령에게 시간을 두고 납득토록 해 본격 대선 국면에서 그가 한나라당의 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즉답을 피했을 것이다. 이 역시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입장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전후 사정이 당 밖 여론의 이해까지 구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한나라당과 서 대표의 어정쩡한 태도는 자칫 김 전대통령에 대한 눈치보기나 현철씨 출마에 대한 비판 여론 확산을 기다려 자신들은 발을 빼려는 줄타기 행태로 비친다.
여론은 이미 현철씨 공천 압력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김 전대통령과 당당하게 선을 긋는 도덕적 원칙이 확고하다면 서 대표는 고민을 할 일도 없게 된다. 대신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민심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의 속앓이는 덜어질 것이다.
유성식 정치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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