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거듭나게 만드는 월드컵 축구를 보면서 한때 전 세계 최고의 영예를 안았으되 승리하지 못하여 짐을 싸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유럽 강호들의 모습을 보자니 그 치열한 경쟁과 조릿대와 다른 식물들의 생존이 자꾸 떠올라 오늘도 조릿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한라산에 오르다 보면 제주조릿대에 고마워하는 공덕비를 볼 수 있습니다. 제주조릿대는 제주도에만 자라고 키가 작고 잎 가장자리에 무늬가 있는 종류입니다.
옛날 흉년이 크게 들어 제주도 온 백성이 굶어 죽게 되었는데 이 제주조릿대가 일제히 꽃을 피워 열매를 맺어 이를 먹고 목숨을 구했기에 이를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조릿대도 벼과 식물의 한 종류여서 그 열매는 잘 골라 가루로 빻아 죽 같은 것을 끓여먹을 만하다고 합니다.
조릿대나 대나무들은 아주 드물게 꽃을 피웁니다.
땅속에 뿌리줄기로 왕성하게 뻗어나가는 일종의 복제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번식하는 식물들은 점차 게을러져 꽃이라는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를 생략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화를 모르는 방식들은 일정한 양분을 가지고 있는 땅에 너무 과밀도가 되어 공멸하는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때쯤 되면 생존의 위협을 느껴 꽃을 피우는데 그리하면 그 세가 급격히 약해지게 되고 일부 개체만이 살아 남게 됩니다. 조절의 기간이지요.
한라산은 자연을 잘 보호하기로 유명한 산입니다. 그런데 이 제주도에서 지금 제주조릿대에 대한 논란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발단은 이 산에 자라는 우리나라의 특산식물이며 세계의 자랑거리인 구상나무 군락이 점차 위축되는 원인을 찾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제주조릿대와의 땅 속 뿌리 경쟁에서 밀려가고 씨앗이 떨어져도 싹을 틔울 수가 없는 것이 큰 이유의 하나입니다.
얼마 전까지 “이러다가 어느 해 제주조릿대가 일제히 꽃을 피우면 그 경쟁의 선 뒤로 한참 밀려나 조절이 되니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꽃이 피어도 그 무서운 기세는 좀처럼 물러날 줄을 모릅니다. 참 큰 고민거리입니다.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원인을 논하다 보니 예전에는 한라산에 방목하던 소나 말이 겨울이면 푸른 잎을 가진 제주조릿대를 먹었답니다.
하지만 한라산 생태계 보전차원에서 이를 금하게 되었고 제주조릿대의 큰 적이 하나 사라진 것이지요.
반대로 한라산 자연보호의 상징인 노루는 너무 늘어나고 있는데 겨울철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제주조릿대는 먹지 않고 대신 정말 희귀한 시로미 같은 식물들을 먹어버리는 것이지요.
인간이 조금 알고 자연에 함부로 간섭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절감합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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