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신약들이 왜 미국에서 주로 개발되는가. 세계 2위의 제약시장인 일본에서 주목받는 신약이 개발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답은 바로 ‘돈’이다. 미국의 기초 의학연구를 주도하는 국립보건원(NIH)의 1년 예산은 230억 달러(약 28조3,000억 원), 민간 기업들의 생명공학 투자는 연간 450억 달러(약 55조4,000억 원)를 넘는다. ‘돈’이 미국 신약 경쟁력의 근원이다.” (화이자 과학정책실장 존 스웬)“미국은 남보다 앞선 1978년부터 불모지였던 생명공학 산업에 집중 투자, 지금은 전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미국이 이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전학은 향후 25년간 전자공학과 컴퓨터를 능가하는 엄청난 변화와 충격파를 가져올 게 분명하다.” (생명공학 기업 ‘바이오젠’ 회장 제임스 빈센트)
‘포스트 게놈’의 과실은 누가 가져갈 것인가. 전체 염기서열의 85%를 분석해 낸 미국, 그 중에서도 산업적으로 실용화 능력을 갖춘 거대 생명공학 기업들의 독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00년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2,200억 달러. 1990년대 들어 삶의 질과 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제약산업은 연평균 1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화학적 합성기법을 이용한 기존의 신약 개발 방식이 한계에 부딪치면서, 이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것도 사실이다.
미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위크는 최근 영국의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미국의 머크 등 8개 다국적 제약사의 순이익이 최근 5년간 두자리 수 증가율을 기록했지만, 올해엔 4.4% 증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상당수 질병 치료제가 이미 개발돼 신약 개발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300억 달러 규모의 의약품 특허권이 4년 내 만료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제약사들의 지난 해 연구개발비는 303억 달러로 1990년 84억 달러에 비해 3배나 늘었지만,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은 오히려 52개로 20% 가량 줄었다고 한다.
결국 이들 기업은 게놈 정보를 이용한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입장이다.
머크 홍보실장 그레고리 리브스는 “게놈 해독은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 혁신적인 신약을 개발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존 약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암, 당뇨병 등 각종 난치병을 정복하려면 맞춤형 신약 개발에 승부를 걸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머크, 화이자 등 세계적인 제약기업들의 자본과 기술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이들이 ‘게놈 패권’마저 독식할 것이라는 주변국의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영국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의 2001년 매출액은 1년 전보다 12% 가량 증가한 295억 달러(약 36조3,000억 원). 올해 우리 정부 예산 111조 원의 3분의 1에 달하는 수치다. 연구 개발에만 연간 40억 달러(약 5조 원)를 쏟아붓고 있다.
머크의 지난 해 매출액은 477억 달러(약 58조7,000억 원), 순익은 72억8,000만 달러(약 9조 원)에 달한다. 올해 R&D 비용은 지난 해보다 20% 가량 증가한 29억 달러(약 3조5,600억 원).
미국의약연구제조자협회(PhRMA)는 2000년 연례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매출액의 20%를 R&D에 투자, 현재 암 치료제 350개와 치매 뇌졸중 등 난치병 분야의 신약 1,000개를 개발 중”이라며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5억 달러, 특히 2000년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신약의 경우 평균 12~15년간 8억8,000만 달러를 투자해 개발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 제약업체는 신물질 개발에 따른 위험부담, R&D 투자 저조로 인한 기술낙후 등으로 선진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게 현실이다.
국내 제약업체의 R&D 비용은 전체 매출액의 3~7% 수준으로, 수백 개 회사를 모두 합쳐도 3,000억 원 선에 그친다.
연구인력도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은 1만6,000명, 화이자는 1만2,000명 수준이지만, 국내 제약업체는 많아야 100명 안팎이다.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은 세계 7개국에서 24개 첨단 연구센터를, 머크는 일본 프랑스 이태리 등 세계 6개국에서 8개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자존심 상하는 얘기지만, ‘정면승부’를 피하라는 게 그들의 솔직한 조언이다. ‘게놈 특수’마저 일부 다국적 기업이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글락소 스미스클라인 연구소의 로버트 홀링스워스 박사는 “염기 서열에 대한 정보는 인류 공동의 유산인 만큼 공유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염기 서열을 분석, 응용해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응수했다.
머크 홍보실장 그레고리 리브스는 “바이오벤처가 성공하려면 독창적인 기술로 세계 시장에서 승부해야 한다. 오랜 기간 천문학적인 투자가 필요한 신약 개발 보다는 거대 제약회사들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특화한 바이오 분야에서 승부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머크연구소 선임연구원 김두섭 박사도 “한국 제약사들이 고혈압 당뇨병 등 주요 질환 치료제 개발에 매달리기 보다는, 희귀 질환 치료제와 같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전략이 필요하다”며 “거대 자본과 인력을 앞세운 미국과 정면승부하기 보다는 그들이 소홀할 수밖에 없는 동양인 고유의 유전질환 분야 등을 적극 공략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뉴욕=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신약개발 최소 10년·5억弗 소요
신약은 인체에 대한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기존 물질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신물질로 만들어진 약을 말한다.
현재 신약 개발 능력이 있는 회사는 미국 독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10여 개국 50여 개 기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9년 7월 SK케미칼이 국산신약 1호인 백금착제 항암주사제 ‘선플라’를 개발, 신약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했다.
미국 듀크대 연구팀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어떤 신물질에서 신약을 개발할 확률은 평균 5,000분의 1. 즉 5,000개의 신물질을 골라 연구할 때 환자 대상의 임상시험까지 가는 경우가 5개, 보건당국의 최종 사용승인을 받는 경우는 1개에 불과하다.
신약은 개발기간만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 새로 합성한 수 백만 가지 신물질에서 후보물질을 골라내는데 보통 2~10년, 동물실험을 이용한 안전성 평가와 수천 명의 정상인과 환자 대상의 임상시험에 7~9년이 소요된다.
특히 마지막 3차 임상시험은 전세계 수 백개 병원에서 3,000~1만 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5년간 진행된다.
정부(FDA)의 승인심사에도 보통 1~3년이 걸린다. 화이자 과학정책실장 존 스웬은 “100개의 연구팀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경우 신약으로 연결되는 확률은 1%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의약연구제조자협회(PhRMA)는 2000년 연례보고서에서 “신약 1개 개발비용이 10년 전 1억 달러에서 현재 5억 달러로 늘었다”라며 “2000년 미국 기업들이 신약개발에 투자한 비용만 264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런 힘든 과정을 통해 개발되는 신약은 전세계적으로 한해 평균 50~60개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최근 3년간 160개의 신약을 개발했으며, 이 중 민간 제약기업이 143개(89%), 대학 연구팀이 7%, 국립보건원(NIH)과 같은 정부 연구소가 2%를 개발했다.
/고재학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