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무적불패의 축구실력만 아니라 공동개최국의 자긍심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멋진 경기장에서부터 붉은 악마의 응원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경기장에 찾아온 오존주의보는 오랜 기간 준비해 온 환경월드컵에 오점을 남겼고 부끄러운 우리의 환경 현실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5일 미국과 포르투갈의 경기가 열린 수원을 비롯한 경기도 일대에 오존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수원 월드컵 경기장 주변에는 오후 3시부터 경기 시작 한시간 뒤인 오후 7시까지 오존주의보가 계속되었다.
다음날인 6일에는 서울에 극심한 스모그와 오존주의보가 내려졌으며 7일에는 다시 경기 고양시로 이어졌다. 사흘 동안 수도권에서 한 경기만 열린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존주의보가 발령된 상태에서 심한 운동을 하면 오존이 폐 깊숙이 침투하여 인체에 매우 해롭다.
오존은 맹독성 물질이기 때문에 노약자나 어린이, 그리고 호흡기나 심장 질환자는 치사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 그래서 오존주의보가 발령되면 외출과 운동을 삼가야 한다.
그러나 피를 말리는 월드컵 조별 예선 경기는 열릴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5일은 전 세계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환경의 날’이었다.
오존은 자동차 배출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이 강한 태양 빛을 받아 만들어 내는 물질이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결합하여 스모그를 만들어 낸다. 6월은 일조량이 많고 바람이 적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오존과 스모그가 가장 심한 시기이다.
그래서 경기 당일과 전날에 승용차 2부제를 실시하고 주간에는 주유를 자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대책도 수도권에는 통하지 않았다.
수도권의 오존과 스모그는 지난 몇 십년간 잘못된 국가 경영의 결과다. 현재 수도권에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45%, 자동차의 46%가 집중되어 있다.
매년 늘어나는 택지와 도로 수요를 위해 산림과 초지는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도로가 계속 건설되지만 늘어나는 자동차로 교통난은 그대로다. 지난해 교통체증 손실비용으로 추산된 19조원 중 상당 부분이 수도권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석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세계 6위의 석유 소비국이다. 이는 곧 엄청난 양의 석유가 수도권 도로에서 쩔痴愎募?것이다. 지금의 현실로는 수도권의 오존과 스모그는 피할 수 없다.
더욱 염려스러운 것은 수도권의 인구 집중이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ㆍ4분기 수도권 인구 유입이 12년 만에 최고였다는 발표가 통계청에서 나왔다.
수도권 밖의 모든 시ㆍ도는 인구 유출 현상을 보였는데, 수도권으로 들어온 인구는 전북 출신이 29.1%로 가장 많았고, 경북(10.6%) 전남(9.9%) 강원(8.9%) 순이었다. 반면 사람들이 떠난 시ㆍ도는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낙후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최근 국가 6대 전략산업(IT, BT, ET 등)에 대하여 수도권 입지 규제를 해제하고 지식기반산업 육성지구를 지정하여 세제 감면 혜택을 주는 정책을 내놓았다.
전략산업이란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 주는 산업이다.
그래서 더 많은 인구를 끌어들이고 경제적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산업이다. 이것은 곧 국토의 균형 발전과 인구 분산을 포기하겠다는 정책이나 다름없다.
수도권의 잦은 스모그와 오존주의보는 이곳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자연이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다는 신호다.
공단을 만들고 신도시를 건설하고 사람을 끌어 모으는 일은 그만하고 숲을 가꾸고 하천을 살려 생명이 숨쉬게 하라는 자연의 경고다.
이 경고 뒤에는 더 큰 고통과 참혹한 환경재난이 기다리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 자연의 경고를 엄숙히 받아들여 더욱 강력한 국토의 균형 발전을 추진해야 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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