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종료 2분전 왼발슛 빗장 '박살'그의 골은 기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한국과 이탈리아가 8강행 티켓을 놓고 다룬 18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한국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43분.종료 2분을 남기고 폭주기관차 설기현(23·안더레흐트)의 왼발 슛이 꽁꽁 막혀있던 이탈리아 골 문을 활짝 열어 제쳤다.
이날 왼쪽 공격수로 나선 설기현은 율리아노_코코_말디니_파누치로 이어지는 이탈리아의 4백 라인이 쳐놓은 빗장수비의 틈새를 끊임없이 노렸지만, 마치 견고한 요새와 같은 이탈리아 수비는 좀처럼 틈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리는 법. 종료 2분을 남기고 황선홍이 넘겨준 센터링이 상대 수비수를 맞고 나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왼발 슛, 이탈리아 골 네트를 흔들며 천금 같은 동점 골을 터뜨렸다.
한국의 패배로 끝나 가던 이날 경기를 순식간에 연장으로 몰고 가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짓눌렸던 오랜 골 가뭄에 마침표를 찍는 골. 또 자신을 한국 최고의 킬러로 평가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보은하는 골이기도 했다.
설기현은 유럽의 거한들과 맞서도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는 파워, 상대진영 최전방에서 수비를 교란하는 활발한 몸놀림, 적극적인 수비 가담 등을 눈 여겨본 히딩크 감독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아왔다.
강릉상고와 광운대를 거쳐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멤버였지만 이동국 등에 가려 주전 역할을 못했던 설기현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끊임없는 노력을 바탕으로 성공한 대기만성형 선수다.
2000년 8월 벨기에 1부리그 앤트워프로 진출, 6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을 펼쳐 지난해 여름부터 벨기에 최고 명문인 안더레흐트에서 뛰고 있다. A매치에서는 그동안 9골을 뽑아냈다.
■PK실축 훌훌 연장서 '속죄의 축포'
연장 후반 12분 승부차기를 준비할 즈음 안정환(25ㆍ페루자)의 반지 세리모니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 8강 진출이었다. 안정환은 거스 히딩크 감독을 울고 웃게 만들었다. 전반 4분 설기현이 얻은 페널티킥 키커로 나설 때까지만해도 안정환은 한국의 해결사로 보였다.
그러나 안정환의 오른발 인사이드 슈팅이 이탈리아 GK 부폰의 펀칭에 걸려 무위로 돌아갔을 때 그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순간 안정환은 미국전서 이을용이 페널티킥을 실축했을 때가 생각났고 곧이어 자신의 동점골로 한국을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 낸 것이 잇달아 뇌리를 스쳤다.
한번 잃은 평상심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고 여러 차례 실수로 마음에 상처만 쌓여갔다. 패배의 위기감이 팽배할 즈음 후배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안정환에게는 다시 한번 속죄의 기회가 남아있었다.
연장 전반 11분 아크 오른쪽에서 얻은 프리킥을 황선홍이 오른발로 절묘하게 차넣었지만 GK 부폰의 선방에 걸린 한국은 운마저 따르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안정환에게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다. 후반 12분 미드필드 오른쪽에서 이영표가 올려준 센터링을 페널티지역 정면에서 솟구쳐 오르며 헤딩, 한국의 8강행을 결정짓는 골든골로 이어졌다.
안정환은 10일 미국전에 이어 다시 한번 반지 키스의 골세리머니를 선보였고 페널티킥 실축의 마음고생을 씻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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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월드컵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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