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당에서 일고 있는 대통령 후보 교체론은 1997년 15대 대선 당시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의 후보 교체론에 이은 두 번째이다.당시와 현재의 후보 교체론은 “지금의 후보로는 대선에서 이길 수 없으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총론에서는 같지만 5년 전과 현재의 정국 및 각 당의 역학 구도가 다른 만큼 계기와 주체, 진행 양태 등은 차이가 있다.
우선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에 대한 교체론은 6ㆍ13 지방선거 참패가 직접적 요인이나 5년 전 신한국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아들의 병역 문제에 따른 지지율 급락이 후보 교체론의 계기였다. 97년에는 이 후보가 7월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이후 12월 대선 때까지 3개 지역의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제외하고는 큰 선거가 없었다.
당시 후보 확정 직후만 해도 50%를 웃돌았던 이 후보의 지지율은 민주당이 제기한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확산되면서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빌미로 한 당내 후보 교체론자들의 후보 흔들기가 상황을 악화시켜 급기야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쳤다.
이인제(李仁濟) 의원이 “정권 재창출 가망이 없다”며 신한국당에서 나가 독자 출마를 강행한 것도 이 무렵이다. 18일 노 후보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재신임 방침 결정에도 불구하고 교체론의 불씨가 꺼지지 않을 경우 노 후보의 대선 경쟁력이 크게 약화, 제3 후보 영입 등을 둘러싼 분당 사태까지 점쳐질 수 있다는 관측도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내 비주류가 후보 교체론의 중심에 선 것은 두 경우가 비슷하다. 97년에는 신한국당의 민주계 일부가 주축이 된 ‘정치발전 협의회’가 앞에 섰다. 현재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장을 자임하고 있는 한나라당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당시 정발협의 리더였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이 후보의 비타협적 태도를 껄끄럽게 여겼던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골수 민주계의 의사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대선 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의원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충청권 의원들이 가장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후보 사퇴 압력에 대한 두 후보의 대응 방식은 매우 상이하다. 노 후보는 교체론의 취지를 부분 인정, 8ㆍ8 재ㆍ보선 이후 재신임을 받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
반면 이 후보는 “후보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낡은 정치의식을 개탄한다”며 “모든 도전을 격퇴하고 당의 결정을 지킬 것”고 강하게 맞섰다. 이런 차이점은 두 사람의 기질이 서로 다르고, 5년 전의 이 후보에 비해 노 후보의 당 장악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에서 비롯했다고 볼 수 있다.
유성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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