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축구에서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서 나도 모르게 빨간 티셔츠를 사러 서울 남대문시장에 갔다.일본 가이드북에 꼭 소개되는 남대문시장은 언제 와도 활기가 넘친다.
위세 좋은 장사꾼의 함성, 쉴새 없이 오가는 지게꾼, 정겨운 연기와 냄새를 풍기는 먹자골목. 일본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된 이 활기는 이 곳에 산 지 4년 가까이 되는 나에게 ‘내가 지금 한국에 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런데, 재래시장의 대명사인 남대문시장에서 하나의 이변을 발견했다. 일부 상품에 붙어 있는 가격표가 그것이다.
모든 상품에 꼬리표가 붙어 있는 가게도 있고, 전혀 없는 곳도 있었다. 월드컵 개최에 맞춰 일부 시장에서 정찰제를 실시했다는 보도를 보았는데, ‘아하 이게 그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내가 철이 들고 난 후 일본에선 백화점에서 구멍가게에 이르기까지 모두 정찰제로 판매했다.
제조회사가 정한 것이든, 소매업자가 정한 것이든, 일본인은 물건을 사려면 정해진 가격을 당연히 지불해야 한다고 여긴다.
업자간, 혹은 기업간 협상은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소비자가 물건을 살 때마다 물건값에 대해 상인과 가격협상을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해외여행을 자주 하다 보니 오히려 일본과 같은 나라가 드물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격협상이 통상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재래시장에서는 ‘흥정 실력(?)’이 가격을 결정하고 있었다.
가격 흥정을 해보지 않아서 그런지 솔직히 시장에 가서 가게 주인과 일일이 흥정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다.
때문에 정찰제를 실시하면서도 가격이 비교적 싼 할인마트의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행 중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서 흥정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여행의 재미이며, 협상에 성공(?)해 물건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회는 일본에서 맛볼 수 없었던 소중한 기억이다.
다른 나라를 들르게 될 때에도 일부러 시장에 뛰어들어 한국에서 배운 ‘흥정 실력’을 발휘해 현지 상인들로부터 ‘깍쟁이’라는 싫지 않은 말을 듣기도 한다.
남대문 시장의 정찰제는 제대로 정착돼 있지도 않고, 오히려 에누리 가격을 그대로 표시한 경우도 많다.
월드컵을 위해 ‘관광객 덮어씌우기 정책’을 묵인하느니, 차라리 관광객의 ‘흥정 체험’의 권리를 허용해 주었으면 한다.
/도도로키 히로시 일본인 서울대 지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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